고개를 넘다

[二輪紀行] ep. 16 괴산에서 문경

by 최기훈


고개를 넘는 일, 그게 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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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길, 고개를 넘자 바람의 결이 달라진다. 고개 남쪽의 바람은 온화하고, 북쪽의 바람은 매섭다. 백두대간 이화령의 굽이를 돌며 나는 그 경계선을 넘고 있었다. 이 고개는 오래전부터 서울과 부산을 잇는 직선 위에 있었다. 그래서 영남의 ‘영(嶺)’이 바로 이 조령을 뜻한다. 이 고개를 기준으로 남쪽의 땅을 영남이라 불렀다. 길 하나가 지역의 이름이 되었으니, 이곳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한 시대의 중심이었다.


길은 사람을 모은다. 문경새재에는 예부터 산적이 많았단다. 지형이 험하고, 속도를 낼 수 없었으니까. 짐을 실은 수레와 사람은 느리게 오르고, 그 틈을 노리는 자들이 있었다. 심지어 1980년대까지도 산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나가는 트럭에 몸을 던져 짐을 털고, 홀연히 다시 숲 속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 지금 들으면 옛날 설화 같지만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다.


나는 표지석 옆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헬멧을 벗었다. 바람이 귀를 스쳤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떠난 선비들, 짐수레를 몰던 장정들, 그들의 숨결이 아직 이 고개를 건너고 있는 듯했다. 넘는다는 건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통과시키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금 고개를 넘는 일에는 대단한 의미가 없다. 내가 이 고개를 넘어도 세상은 그대로다. 단지 공기의 차고 덥기가 조금 바뀌고, 사투리의 억양이 달라질 뿐이다. 그러나 그 미세한 차이를 느끼기 위해 나는 또다시 고개를 넘는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 사소한 변화가 나를 다시 달리게 했다. 온 세상이 그대로인데, 내 안의 바람만 새로워졌다. 멀리 산등성이 끝에서 햇살이 번졌다. 길은 여전히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아마도,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바이크를 타며 이런 작은 변화를 느끼는 일이 조금은 더 어렵고, 조금은 더 소중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천천히 스로틀을 더 당겼다. 고개를 넘는 일, 그게 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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