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근데 그냥 이렇게 살아볼까?
어느 날 학원을 간다고 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쓰윽 날아가버렸습니다. 사실은 어디 쯤에서 흘린지도 모르겠지만 듣고 있던 음악이 어느 순간 끊겼고, 주머니를 몇 번 뒤적인 다음에서야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장 학원 가기를 멈추고 차를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무지 어디 쯤에서 잃어버렸는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헬멧 블루투스기기 제조사에 따르면 해당 모델은 최대 반경 2km 범위 내에서 작동한다고 하니 강남역에서 신사역까지 갈 수 있는 거리를 다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었기에 스마트워치를 이용해 친누나에게 이 사실을 먼저 알리고 비상연락을 받을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두 세 바퀴 정도 빙빙 돌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라고 했던가요, 퇴근 길 수 많은 차량이 오고 가는 대로 위에서 '나의 아이폰 찾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휴대전화 찾기를 일단 포기하고 학원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수업보다도 도로 위 어딘가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휴대전화에 가 있었습니다. PC를 사용해 iCloud에 접속했습니다. 해외에서 한 번 잃어버린 아이폰을 '나의 아이폰 찾기' 기능을 통해 되찾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당연히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전 세계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는 나의 아이폰 찾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고, "사용 가능한 위치 정보 없음" 이라는 메시지만 표시될 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디지털디톡스를 실천하며 스마트폰으로부터 충분히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고 나니 몹시 불안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기록들, 일정 관리, 네비게이션 사용 등 당장 오늘 자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해 해야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의 개인적인 정보들과 데이터도 스마트폰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도 들었습니다. 물론 소통수단으로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은 극히 적었지만 일상의 효율성과 편리함의 측면만으로도 큰 손실처럼 다가왔습니다. 이 반쪽짜리 디지털디톡스에서 나는 여전히 스마트폰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미 90%는 포기하는 심정이었지만 길바닥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맞은 편 차선에서 신호대기하고 있는 차량 한 대 아래에서 무언가 번쩍이는 불빛을 본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갓길에 차를 정차하고 차들이 멈추기까지 기다렸다가 불빛이 있던 곳으로 갔습니다. 정말 운이 좋게도 그것은 저의 스마트폰이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만은 없을 만큼 저의 스마트폰은 지나가는 차들에 몇 번을 밟혔는지 외관이 처첨한 상태였습니다. 일단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살펴보니 액정의 훼손이 너무 심해 손가락이 베일 것 같아 이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투명 테이프를 액정 위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화면 1/3인 상단에 해당하는 부분의 터치가 완전히 먹통이었습니다. 많은 수의 어플리케이션에서 '저장', '확인', '전송', '완료'와 같은 버튼들이 화면 상단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실제 어플리케이션 사용에 많은 지장이 있었습니다. 키보드도 누르는데 몇 가지 자판은 누를 수가 없었고 그 옆이 눌러지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키보드 자판이 제 멋대로 눌리는 바람에 전화를 걸어서는 안되는 직장 상사와 회사 업무 관련한 외부 기관 담당자 두 분께 전화가 가고 말았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긴 했지만 이대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일단 그 날은 그냥 넘어갔지만 그러고나니 그냥 최대한 스마트폰을 안보게 되었습니다. 겨우 음악이나 틀고, 가능한 할 수 있는 것은 PC로 처리하였으며 아예 스마트폰을 두고 스마트워치만 차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어찌어찌 업로드 할 수는 있었는데 화면 상단이 눌리지 않는 바람에 볼 수는 없었다는 점 입니다. 그러한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동시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정신적으로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냥 이렇게 살까? 좀 불편해도 뭐 디지털디톡스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잘 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목요일에 휴대전화를 잃어버렸고,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목요일에 쿠팡 로켓배송으로 새 휴대전화를 받았으니 딱 1주일 동안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망가진 휴대전화를 그냥 쓰는 것과, 피쳐폰을 사용하는 옵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장난 휴대전화 때문에 내가 불편한 것은 상관이 없었지만 지난 번처럼 불필요한 전화가 발신이 되어버린다면 곤란한 상황이 반복될 것 같았습니다. 또한 피쳐폰은 스마트폰보다 오히려 구하기가 힘들었고 가격면에서도 기능에 비해 큰 메리트가 없었기에 새로운 스마트폰을 구매하게 되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저렴한 모델을 선택하긴 했지만요.
지난 1주일 동안의 경험을 통해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고 나서의 불안함과 불편함을 체감하면서, 디지털디톡스를 실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스마트폰에 의존하고 있는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스마트폰을 찾기 위한 노력과 그에 따른 일상의 제약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도와 의지의 한계를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또 적응해 나가면서 디지털디톡스의 장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결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한 디지털 생활을 추구하면서도 실제 상황에서의 대안적인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디지털디톡스 실천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