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은 거저 오지 않는다
몇 해 전 일명 '남초' 회사를 다닐 때의 이야기다. 사무실 내 유일한 여자 직원이었던 나는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일이 쉽지 않았다. 유튜브에 개그 소재로 종종 등장하는 '남자들의 점심식사'를 보며 깔깔 웃을 때는 몰랐지. 그것이 현실로 다가올 줄은. 남자들의 소울푸드인 제육, 돈가스, 국밥 (더불어 닭갈비 볶음밥도 엄청 좋아한다)은 내 입맛과도 잘 맞아서 매일 이 메뉴들을 돌아가며 먹어도 괜찮았다. 식당 가서 밥만 먹는 단순함은 심지어 마음에 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걸림돌이 되는 건, 속도였다. 그들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양 음식을 들이켰다. 주변에서 빨리 먹으니 나도 점점 식사하는 시간이 빨라졌고, 그만큼 소화가 안 되는 날도 늘어갔다. 10~15분 정도 거리의 식당에 가서 주문하고 먹고, 다시 10~15분 되는 거리를 걸어와서 커피와 담배 타임을 가지는 데까지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아니 이게 가능하다고?
잘 돌아가는 기계에 스탑버튼을 누른 것처럼 함께하는 점심 식사에 반기를 든 건, 1~2달이 지난 후였다. 일단 도시락을 싸와서 "저 오늘은 도시락을 싸와서 사무실에서 먹을게요!"라고 이야기했고, 그날부터 고요한 점심시간이 주어졌다. 도시락을 싸오지 않는 날엔 근처 식당에 가곤 했다. (직원들이 가지 않는 식당을 고르는 치밀함을 발휘했다) 걸어서 갈만한 식당이 많지 않았기에 대부분 도시락을 싸와서 사무실에서 혼자 조용히 먹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혼자 먹으면 천국일 것 같았던 점심시간도 일상이 되어갔다.
날이 아주 좋던 가을날, 회사에 적응한 몸은 이제 슬라임처럼 흐물흐물해졌다. 출근하고, 일하고, 혼자 점심 먹고, 퇴근하고, 저녁 먹고, 자고. 아이고 지겨워. 지루함도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이대로는 안되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회사에서도 재미있는 일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음... 뭐가 있을까? 그렇지 점심시간! 손을 번쩍 들고 개인시간을 쟁취해 낸 딱 1시간. 그 시간이라면 무언갈 할 수 있을 거였다. 마침 날씨는 좋고, 회사 근처에는 큰 공원이 있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내겐 뉴요커처럼 무심하게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 먹으며 책 읽는 로망이 있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공원 벤치에 앉아 싸 온 도시락을 먹고 있노라니 꼭 센트럴 파크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뉴요커가 된 것 같았다. 공원 점심시간은 삭막한 회사생활에 오아시스가 되어주었다.
그날 처음 깨달았다. 작지만 사소한 행복은 하루를 풍성하게 해주며, 그런 행복은 직접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것을.
쳇바퀴 같은 일상. 돌고 도는 하루하루. 그렇게 지내다 보면 금세 일 년이 지나가곤 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어느 글에서 본 건데,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새로운 사건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이야기가 많으면 책이 두꺼워지는데, 이야기가 없으면 책이 얇아지는 것이다.
"먹고 살기만도 벅찬데, 무슨 다양한 이야기? 먹고살만한가 보다."
'이야기'라고 하면, 인생의 빅 이벤트가 될 만한 사건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평소에는 잘 가보지 못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큰 마음을 먹어야 떠날 수 있는 해외여행 등. 하지만 하루하루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건, 이런 '빅 이벤트'들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이벤트들은 오히려 너무 중대한 사건이라 자주 할 수 없고, 이야기의 질은 높일 수 있으나 양을 불리지는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풍성한 이야기는 소확행에서 온다. 출근하는 길에 마시는 커피를 조금 다른 메뉴로 바꿔보는 것. 그러다 마음에 드는 음료를 찾았을 때 씩 웃어보는 것.
생활하다 보면 기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일상이 반복되는데, 그 사이에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바꿔보는 것. 이런 것들이 소소한 하루의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늘 하던 것으로부터 떨어져 보는 것. 그것이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