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무기력

by 수윤

물을 가득 머금은 솜이불처럼 몸이 축축 처지는 날.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들이 버거워지는 순간이 온다. 뭘 해먹을 힘도 없어서 배달어플을 연다. 최소주문금액을 맞추기 위해 먹고 싶지 않은 메뉴까지 밀어 넣어 꽉 채워진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둔다. 마치 내 몸 안에 쌓인 독소들처럼 터질 듯이 가득 담긴 봉투. 이럴 때일수록 자극적인 음식이 땡기기 마련이다. 마라탕, 햄버거, 엽떡, 매운 짬뽕 등등... 음식들을 하나하나 꺼내 밀봉된 비닐을 까고 앉아서 먹는다.


와아 너무 맛있다. 하루 중 가장 생기 있는 한 순간. 그러나 이내 배가 부르고, 욕심껏 주문했던 음식들을 억지로 입 안으로 삼켜낸다. 과식하고 나니 몸은 한껏 더 무거워진다. 1킬로짜리 물 먹은 솜이불이 2킬로짜리 물 먹은 솜이불이 된 느낌. 널브러진 플라스틱과 음식물 쓰레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동시에 나를 본다.


어릴 때는 이런 내 모습마저 스트레스였다. 잔뜩 늘어진, 게으르고 쓸모없는 인간.


"이렇게 해서 뭘 해내겠어?"

"뭐 했다고 지친 거야?"

"언제까지 감정조절 하나 못하고 이런 식으로 살래?"


안 그래도 축축 늘어지는데, 이런 말을 내게서 들으면 1톤쯤 되는 물 먹은 솜이불이 된 것 같았다. 조금만 말려내면 금방 털어낼 무기력이 1달이 지나도, 2달이 지나도 말려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물을 부어대는 나라는 사람 때문에.


무기력은 일종의 늪과 같아서 빠져나오려고 나를 채찍질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곤 했다. 그러다가 지쳐 온몸에 힘을 빼고 냅다 누워버렸을 때, 뜻밖에도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퍼져버리니 그제야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번아웃도 무기력도 언젠간 다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나니 별 거 아닌 일이 되었다. 그림자일 때는 호랑이 같아 보이던 몸집이 실제로 보니 고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달까? 더 이상 무기력함이 두렵지 않다.


"에잇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할거 평소에 보고 싶었던 드라마나 정주행 하자!"

"이참에 쉬고 좋지 뭐!"


그저 최선을 다해 몸에 힘을 빼고 뒹굴거린다. 바닥에 충전기가 붙어있는 것 마냥 누워서 일어날 줄 모른다. 그러다 완충되면 그때 일어나면 되니까. 이젠 다시 또 일어날 나를 믿으니까 얼마든지 넘어져도 괜찮다.


무기력한 몸과 마음으로 힘든 분들이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괜히 나한테 못된 말 퍼부으며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신생아가 된 것처럼 지내세요.

맛있는 밥 주고, 잘 자고, 잘 싸... 음 그렇고, 이 세 가지만 잘해도 폭풍칭찬 해주세요.

그러다 보면 그 시간도 금방 지나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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