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 생각나는 순간은

by 수윤

"라면이 생각나는 순간은 사실 배가 고플 때보다 어딘지 마음이 헛헛할 때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_ 윤이나, [라면 :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이보다 지금의 나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 없다. 준비했던 자격증 과정이 다 끝나고 "이제 해방이다!"라고 외치자마자 찾아온 헛헛한 마음이 무릎을 푹푹 바닥으로 내리꽂을 때 생각난 건 다름 아닌 라면이었다. 1달 전 쯤, 밤 12시에 참을 수 없는 가짜 배고픔에 휩싸여 꺼내들었던 것도 라면이었고. 윤이나 작가님의 말처럼 라면은 배가 고플 때보다 마음이 헛헛할 때 생각나는 음식인 것 같다. 따끈한 국물이 마음을 데워주기 때문일까. 짭짤하고 매콤한 맛이 밍숭맹숭한 마음에 마침표를 탁 찍어주는 것 같아서일까. 이유야 어쨌든 갓 끓인 라면의 냄새를 맡고 한 젓가락 먹을 때의 만족감은 5성급 뷔페 부럽지 않다.


지난 책 문장이 떠오른다는 건, 문장과 나의 때가 맞았다는 뜻이다. 라면을 한 젓가락 떠서 먹었을 때 머릿속에 윤이나 작가님의 문장이 떠올랐던 것처럼, 이렇게 삶에서 책 속의 문장들을 맞닥뜨릴 때면 내가 얼마나 작가님들에게 빚지며 살아오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동시에 내가 쓰는 한 줄도 누군가의 삶에 가닿을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keyword
이전 07화산뜻한 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