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무심한 남편
아프니까 사장이다 커뮤니티에 쓴 칼럼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에게 가장 화를 많이 낼까요?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엄마, 배우자, 자녀, 등과 같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많이 낸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아를 인지하는 뇌의 부분과 가까운 사람(편안한 사람)에게 대하는 뇌의 부분이 상당히 일치한다고 들었습니다. 즉 가까운 상대가 나의 생각과 불일치하면 마치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듯 상대에게도 화를 내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예: 지갑 또는 휴대폰을 잊어버리고 엄마에게 짜증내기)
그만큼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당사자에게 소중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와이프가 저에게 화를 많이 내는 것인가 봅니다.'
오늘은 팔불출 같지만... 와이프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희 부부는 동갑내기 00학번입니다. 학교는 다르지만 대학교 때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났습니다. 2001년에 만나서 1년간 연인이었다가 10년간 다시 남이었다가 2011년에 부부가 되었으니 알고 지낸 지는 20년이 넘었고 같이 산지가 12년이네요. 지금까지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살았다가 최근 들어 알아가는 중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내가 노림수를 계산해서 변화구를 즐겨 던지는 투수라면, 그녀는 전력투구만 하는 돌직구 파이어볼러 임에 틀림없다.'
장사를 하다 보면 눈칫밥이 는다고 하죠. 이것저것 경우의 수를 따져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잘못됐을 경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구멍도 만들어 놓고요. 이런 이득과 손해를 부부관계에도 알게 모르게 적용하다 보니 와이프에게 저는 잔머리만 굴리는 얄미운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거기다가 사업한다고 돈도 많이 까먹었으니 와이프의 주적은 당연히 '남의 편'인 제가 틀림없습니다.
얼마 전 와이프가 결혼생활 10여 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저와 서로 이웃되어 있는 블로그가 있었는데요, 바로 와이프의 블로그였습니다.
'나는 애들을 정말 잘 키워 보고 싶어'
결혼 전 교육관련업을 했던 와이프가 애들을 낳고 일을 그만두면서 했던 말입니다.
"돈은 내가 벌게. 당신 말 데로 우리 애들 한번 잘 키워보자."
그렇게 시작된 외벌이였습니다. 일이 힘들고 돈이 부족할 때마다 혼자 버는 게 힘들었고 내가 가족을 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고생한다는 걸 와이프에게 생색도 내고 알아봐 줬으면 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언성을 높여 싸울 때에는
"집에서 하는 게 먼데? 다른 와이프들은 애도 키우고 살림도 하고 직장도 다니는데 당신은 집에만 있는데 그게 그렇게 힘드나?"
참 못난 남편이네요. 그게 바로 저였습니다.
와이프 블로그에는 애들과 함께한 교육영상들이 200여 개 가까이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과학실험영상, 중국어회화, 수학놀이, 영어스피킹, 그림놀이, 음악시간 등 여러 방향으로 다양하게 시도한 흔적들이 보였고요, 제가 사업한답시고 가정 내팽개치고 있을 때도, 애들 데리고 미술관, 박람회, 음악회 등 많은 곳을 다니기도 했더군요. 누가 보더라도 육아에 전력투구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애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주려고 본인이 중국어 학원을 1년 가까이 다니기도 했었죠.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와이프는 집안일도 참 열정적으로 한 것 같습니다. 바닥에는 머리카락 한올 없고, 수건은 항상 깨끗했으며, 밀린 설거지 또한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 번은 인터넷에서 본 거라며 침대 매트리스를 소금을 뿌려가며 소독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 한번 꼽히면 끝까지 가는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끝까지 전력투구 하는 건 주적인 '남의 편' 바로 저에게도 해당 됐는데요, 원망하고 화내는 것도 정말 1 선발 에이스답게 돌직구만으로 삼구삼진을 노리던지, 기분이 상하면 헤드샷을 겨냥한 강속구가 날아 들어옵니다.
"누구 때문에 이 고생하는데?"
"당신이 지금 나에게 할 소리야?"
"당신이랑 결혼한 게 진짜 후회된다."
이 정도 스트레이트 돌직구가 들어오면 대꾸 한번 못한 채 룩킹삼진을 당합니다. 한 번은 대들었다가 벤치클리어링이 됐는데... 결국 저는 퇴장(집에서 쫓겨나서 지하주차장 차에서 취침을...)당하기도 했었죠.
와이프가 가장 행복해하는 모습은 아들을 바라볼 때입니다. 저랑 똑같이 생겼는데 왜 아들만 좋아할까요. 해답을 아들에게서 찾아봤습니다. 저를 닮아서 그런지 눈치가 빠릅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말이 뭔지를 분명히 알고 불리하면 안겨버립니다.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이뻐. 제일 좋아"
"엄마 안아줘. 나는 엄마가 안아줄 때 제일 행복해"
아들에게 배운 것을 써먹어 보기로 했습니다.
"남편아 쓰레기 좀 버리고 와. 시키는 거 말고는 일절 안 하지?"
"안~아~주~면~ 갔다 올게~~~"
"...... 버. 리. 고. 오. 면. 안. 아. 줄. 께......"
"남편아 아침에 좀 빨리 일어나서 애들 학교 가는 것도 좀 챙기고 해"
평소 같으면 아침부터 잔소리한다고 저도 입이 삐죽 나왔을 텐데요.
"우리 부인 아침부터 잔소리하는 거 참 섹시하다~"
라고 했더니 둘이서 한동안 한참 웃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지금까지 맡은 일에 전력투구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묵묵히 하는 와이프를 보니 제가 참 장가 잘 갔다고 생각이 듭니다.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한 와이프가 업무에도 전력투구하니 영업실적도 좋습니다. 지난 2월에는 투잡 뛰는 저보다 실수령액이 많더군요.
10년 넘게 알지 못한 아내의 비밀은
아내도 저처럼 좋은 말 듣고 싶고
이쁨 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여자라는 걸
제가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아내가 저에게 화를 낼 때마다
"말 좀 이쁘게 하면 안 되나?"
라고 했었는데. 제가 먼저 말을 곱게 하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대화가 부드러워지더군요.
(단골 손님께 하는 친절수준을 와이프에게 유지)
"부인아 나 공돈 생긴 거 있는데 뭐 필요한 거 없어?"
"나 필요한 거 딱히 없고 우리 남편만 있으면 되지!!"
예전에는 디아블로처럼 무섭기만 했었는데 알고 보니 따뜻한 여자였어요.
남편 잘못 만나서 신용회복 같이 하고 있는 아내에게
고마움과 존경을 전합니다.
"당신 정말 대단해"
고맙고 사랑합니다. 행복합시다 우리~!!
이은우
10년간 회사생활 후 7년간 자영업자
코로나 이후 폐업 / 신용회복 2년차
슬기로운 신용회복기 극복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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