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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엘 Mar 02. 2024

손발에 남은 세월의 흔적

손톱을 다치다


손톱이 많이 길지도 않았는데,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손톱이 몹시 불편했다. 한 달 쯤 전에 손톱 밑을 깊이 찔렸었는데, 영 다시 붙질 않는다. 두어 주 지나니까 직접적인 통증은 사라졌지만 손톱의 사분의 일 가까이가 들떠있다보니, 조금만 길어져도 집안일을 할 때 쉽게 휘어지고 걸려서 아주 거슬린다. 


또깎또깍 손톱을 깍다보니 항상 그렇듯 엄마의 손이 떠오른다. 엄마 손은 인생의 굴곡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명사진같다. 마음이 짠해져서 오래 쳐다보지도 못한다. 


한때는 예뻤을 엄마의 손


내가 어렸을 때 엄마 손은 더운 물을 잘 쓰지 못해서 겨울마다 동상에 걸렸었고 항상 빨갛게 얼어 있었다. '얼음이 들었다'고 엄마는 표현하셨었다. 엄마가 연탄가스에 한번 쓰러지고 나서 아버지는 무리해서 기름보일러를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툭하면 터지고 꺼지는 보일러 덕에 머리맡에 둔 물 그릇이 꽝꽝 얼어붙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보일러를 두었어도 엄마는 동상으로 여러 해를 고생하셨던 것 같다. 한겨울에 마당에 파묻은 김장김치를 맨손으로 꺼낼 때마다 김칫국물과 그 냉기가 손에 묻었을 때처럼, 엄마 손은 여전히 불그레하다. 


게다가 엄마의 오른손 손등에는 열 바늘도 넘게 꿰맨 자국이 있다. 내가 중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언니와 내가 한창 사춘기 에너지로 엄마에게 대들고 시끄러웠던 밤이었다. 엄마가 우리에게 화를 내셨던 건 기억이 나는데, 계속 엄마를 보고있진 않았던 것 같고... 서로 씩씩대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는 손등을 감싸며 비명을 지르셨다. 방을 나가려고 하셨었는지, 뭘 집으려고 하셨었는지 모르겠는데, 벽에 붙어있던 보일러 온도 조절기에 손등을 심하게 부딪히며 손등이 찢어지신 거였다. 


그때까지만해도 언니나 나는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심하게 부딫혀서 엄마가 아파하시나보다 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이미 잠자리에 드신 아빠를 빨리 깨워오라고 하시는거다. 그리고 너무 아파서 쩔쩔 매면서 외투를 입으셨다. 그때도 겨울이었나보다. 


엄마 아빠가 집을 나서시고 나서 바닥에 떨어진 진한 피를 닦으면서야, 엄마의 상처가 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살던 동네는 병원이 가깝지도 않았고 게다가 한밤중이어서 몇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오셨는데, 엄마 오른손은 두툼하게 붕대가 싸매져 있었다. 큰 병원 응급실에 가서 열 몇 바늘 꼬맸다고 하셨다. 


몇 주가 지나서 완전히 붕대를 풀었을 때부터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엄마 손등의 꼬맨 자국은 없어지지 않았다. 언니나 내가 직접적으로 가해를 한 것도 아닌데, 엄마가 다치시게 된 게 다 우리때문인 것 같아서 항상 마음이 아프고 죄스럽다.  


나이보다 젊어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고 기분좋아 하시는 엄마도 손에서 보여지는 삶의 고난과 역경은 어떤 크림을 써도 옅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숨기기도 어려운 손등에 있는 흉터가 왜 생겼는지 남에게 푸념을 하시거나 우리에게 너희 키우느라 힘들어 이렇게 됐다고 얘기하신 적은 한번도 없다. 


좀 버릇없이 굴려 하면 엄마의 목소리보다도 엄마의 손이 더 크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너를 바르게 키우느라 고생하신 엄마의 손이라고. 네가 잘못을 저질러도, 성에 차지 않아도, 엄마는 그 손으로 너를 위해 기도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고.


사람이 얼굴은 화장품이나 표정으로 세월의 흔적을 어느 정도는 감출 수 있을텐데, 손발에 담긴 세월의 흔적은 가리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을 만나면 손을 유심히 보게된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발톱을 깍는다는 것


몇 년 전에 첫째 아이와 봉사활동을 하러 간 적이 있다.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을 해 봐야 아이가 세상 어려운 줄도 알 것 같은데, 초등학생 때에는 관리하기가 귀찮다고 받아주는 기관이 별로 없다. 아이가 중학생이 된 첫 여름방학에 어떤 교회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러 갔다. 거기에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서 약을 받고 무료 점심을 먹기 위해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서 찾아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모이셨다. 


아이는 의료진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나도 거기까지 간 김에 뭐라도 하겠다고 했더니 노인들의 손톱 발톱을 다듬어드리는 일을 하라고 주셨다. 근데 몇 번씩 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해 본 적은 없지만 할 수는 있을 것 같으니,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고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는 격주로 와서 손톱 발톱 봉사만 몇 년째 한다는 여자 분이 한 분 있었다. 그 분이 도구 사용법과 발톱을 깎는 요령을 알려주셨다. 나는 세 아이의 손톱 발톱을 몇 년째 깎아주어 왔지만, 노인분들의 손톱 발톱은 두껍고 건조해서 아이들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서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그리고 내 습관 상 마주 앉아서 깎지 못해서 노인분의 옆에 앉아 깎아드렸다. 


처음에는 손톱 발톱을 집에서 깎지 왜 여기까지 와서 남에게 깎아달라고 할까 싶었다. 그런데 여기에 온 분들은 노안이 있어서 잘 안 보이는 눈으로혼자 깎다가 다칠 수도 있는데, 딱히 부탁을 할 가족이 가까이 없는 분들이었다. 가볍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노인분들의 손과 발을 보니, 다쳐서 뭉툭해진 손끝에 납작하게 꺾여붙은 손톱이 있기도 했고, (지금의 내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처럼) 손톱 밑을 다쳐서 회색으로 변한 손톱도 있었고, 살을 파고드는 발톱도 있었고, 너무나 두꺼워져서 일반 발톱깎이로는 도저히 깎을 수 없는 발톱도 있었다. 


놀랍게도 그 날 만났던 수십 명의 노인들 중 손톱 열 개와 발톱 열 개가 모두 가지런한(음...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지만, 소위 '멀쩡한') 분은 한 명도 없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런대로 괜찮게 사시는 것 같아 보이는 분들도 있었고 부부가 같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피곤한 표정으로 불만에 차 있는 분도 있었지만, 소소한 삶에 만족하고 이런 도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신 분들도 있었다. 부끄럽게 손과 발을 내미는 분들도 있었고, 턱~ 하고 시원하게 발을 뻗는 분들도 있었다. 


한때는 일터에서 동네에서 목소리를 냈을 수도 있는 분들이겠지만, 이분들의 손과 발은 한결같이 그간의 세월이 편안하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누구나 한 겹 장막을 걷고 보면 나름의 상처를 안고 있고, 스스로 상처를 보듬지 못할 때에는 남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서로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수십 명의 손톱 발톱을 깎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대체로 깔끔한 분들이었지만, 가끔은 몸이나 발에서 냄새가 나는 분도 있었고, 두꺼운 발톱을 특수 가위로 자르다보면 잘못해서 다치시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격주로 몇 년째 오신다는 봉사자분이 존경스러웠다. 진심으로.


부끄럽게도 나는 그 후로 다시 그 기관에 가지 못했다. 회사일과 집안일로 고갈된 나의 에너지가 제일 큰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인생의 굴곡이 드러났던 그분들의 손발이 생각날 때면, 거기에 오시는 노인분들과 봉사자분들을 위해 화살기도를 한다. 


한동안 코로나19 때문에 봉사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못했을텐데, 그동안 거기에 오시던 노인분들의 손톱 발톱은 어쨌을까 싶다. 식사야 어차피 한두 주에 한 번씩 나들이 삼아 오셨다가 드시는 거니 다른 데에서 대체가 되겠지만, 손톱 발톱을 깍으러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오셨던 분들이 있었는데. 


아무쪼록 이 분들 모두 주변 이웃들에게서 필요한 도움을 받고 계시기를 바란다. 


혼자서 발톱을 깍는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이분들의 손과 발을 만지며 생각하길 바란다. 


이렇게 고생하고 사셨어도 얼굴에 미소가 있으니 보기 좋습니다. 서로 도움 받고 도움 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내 손과 발도 곧 이렇게 늙고 험해지겠지만, 그런 것에 슬퍼하지 않고 작은 일에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노인 인구 비중이 커지고 거시 경제 차원에서는 여러 가지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나도 곧 그 자리에 갈 거라는 생각으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우리를 키우기 위해 그들이 거쳤던 고단한 삶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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