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by 아궁이

요즘 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동네를 한 바퀴씩 걷는다.

거실 창 너머로 보며 “언젠가 가봐야지” 했던 숲길도 천천히 걸어본다.

그곳이 토실토실한 청설모들의 아지트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무 사이를 바쁘게 오르내리는 작은 몸들을 바라보며 두리번거리다 보면, 마치 동화 속 빨간 모자가 된 기분이 든다.


이 도시의 깊고 짙은 자연을 탐색하는 작은 호사를 누리는 시간이다.

주 2회 정도는 집 근처 도서관에 가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나 비교적 저렴한 영어 회화 수업 같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큰 통창 앞 푹신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사람 구경을 하다 보면 여러 언어가 들려온다.

중국어, 스페인어,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 그리고 인도의 낯선 언어들.


여럿이 모여 있는 인도인들은 정말 말이 많고 시끄럽다. 그런데 혼자 앉아 있는 인도인은 놀랄 만큼 조용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인도는 같은 아시아 국가이면서도 내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라였다. 얕은 지식으로는 3천 년 역사의 카스트 제도만 떠올리던 나라였다. 그런데 그 제도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외국인이 지금의 한국을 보며 조선시대 양반 제도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 무지한 선입견이다.


게다가 밴쿠버에서는 중국인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인도인이라고 한다.

이제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궁금해진다. 인도에는 언어도 그렇게 많다니.

나에게 높기만 했던 인도영어의 벽을 넘어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동안 보이지 않았고 느낄 수 없었던 이곳만의 특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허니문 여행자모드가 막을 내리고 나의 시선이 자연과 스카이 라인에서 스카이 트레인을 타고 있는 사람들과 거리 곳곳의 사람들에게 닿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인데 6개월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냄새들이 느껴진다.


사람 냄새,

인종 냄새,

이곳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 인생의 냄새이기도 하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나오다가 평소와 다른 길로 걸어 보았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화려한 그라피티가 벽에 그려져 있었다. PEACE


가까이 다가가자 그 옆에 작은 텐트가 보였다. 주변에는 홈리스의 짐들이 놓여 있었다. 이 도시의 홈리스들은 백인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캐나다 원주민들도 도시로 나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빈곤 속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그들의 기회가 줄어든 걸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지 몰라도 이 "PEACE"라는 단어를 보고 이곳에 짐을 풀었을까?

어쩌면 화려한 도시 아래에서 그가 그려 넣은 평화일지도 모른다.


그가 가진 작은 공간 속의 평화.

거리는 그의 도화지

먹지 못하고 씻지 못해도

내 한 몸 편히 누울 곳 있다면 그곳이 평화.


그의 작은 공간을 지나치며 응원했다.

지금은 철조망 테두리 안에서 PEACE를 누리지만

꼭 다시 우리가 함께하는 사회로

용기 내어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한참을 오면서 이 노래를 들었다.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쳇바퀴 돌듯 끝이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 가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로 감추며

한숨 섞인 말 한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 있는 듯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인생은 아름답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처지에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제약 없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자유가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몰랐다. 나의 비자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벌써 7개월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


마침 Burnaby Hospital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여행자 신분이어도 지원할 수 있었다. 돈을 받지 않는 순수한 봉사이기 때문이다. 지원자 대부분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었다. 캐나다에서는 졸업을 위해 봉사 점수가 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원 과정은 생각보다 엄격했다.

추천서도 필요했고 범죄 기록 확인도 제출해야 했다. 봉사자라 해도 신원을 철저히 확인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매니저 Jeff는 자신도 오랫동안 봉사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파트타임 매니저로 15년째 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30분이 넘는 인터뷰 동안 그는 나의 강점과 약점, 봉사를 하고 싶은 이유를 계속해서 물었다.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기도 했고 여러 상황을 제시하며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물었다.

쉽지 않은 인터뷰였다. 하지만 나에게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는 왜 이 봉사를 하고 싶은 걸까.

솔직히 말하면 회사에서 해고되고, 준비하던 국경 없는 의사회 파견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마음이 허전해졌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직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처음 봉사하러 간 곳은 장기 요양 시설이었다. 치매 관리와 통증 완화 치료를 받는 노인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Fun Fitness 시간에는 환자들이 로비로 나와 음악에 맞춰 운동을 한다.

봉사자는 그 사이에서 함께 움직이며 환자들을 격려한다.


마비된 몸으로도 최선을 다해 팔을 들어 올리는 사람들.

희망을 놓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눈을 마주치며 서로에게 웃어 주는 시간.

병원 전체에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가득했지만 환자와 간호사들은 서로를 밝게 맞이했다.

환자들은 대부분 백인이었고 그들을 돌보는 의료 인력은 인도나 필리핀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았다.

어쩌면 이것이 캐나다 사회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언어가 서툴러도 나와 다른 냄새를 가지고 있어도 이곳에서는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느낌이다.


집에서만 지내다가 오랜만에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긴장되었지만 마음속에서 다시 뜨거워지는 활력이 느껴졌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아니, 잠시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매주 화요일마다 입고 나갈 유니폼 조끼>




론즈데일 퀘이에서 바라본 밴쿠버 다운타운 위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강렬한 빛이 비치는 곳에는 반드시 그늘도 함께 존재한다.

우리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동안, 누군가는 우리가 더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가 하지 않으려는 일을 대신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존재들 인지도 모른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