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2.

태생이 물개

by 아궁이

누가 봐도 어린이 수영 선수권 대회를 제패했을 것 같은 화려한 장비빨을 장착한 그들.

리틀 해녀 같은 시커먼 수영복에 수모와 수경까지 단단히 갖춰 쓰고 나타난다.

설렘 가득한 종종걸음은 봄날에 마당을 뛰노는 똥강아지들 같다.

어디서 배웠는지 둘이 마주 보고 준비 체조는 꼭 하고, 체조가 끝나면 물이 반가워 내지르는 비명소리와 함께 풍덩 몸을 던진다.


능숙한 자유형으로 수영을 할 것처럼 비장하게 들어가지만, 곧바로 멍멍이 헤엄이 시작된다.

깔깔대며 시작된 요란한 물장구는 그리 크지 않은 풀에 물보라를 일으키고

갑자기 시작되는 잠수시합을 하지 않나 다이빙해서 수영장 바닥 짚고 올라오기 게임을 즐기는 등 수영만 빼고 온갖 놀이를 하여 신나게 노는 목욕탕 물개들이 납셨다. 아이들의 물놀이는 한 마디로 요란법석이다.


이 아파트에 처음 집을 보러 온 날,

11층 현관문을 열면 환하게 쏟아지는 햇살과 거실 창으로 보이는 드넓은 풍경이 내 마음에 들었다면,
아이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 수영장이었다.


서울에서 맞벌이 부모에게 수영장은 아이들이 원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체육센터 주말 수영을 가거나, 부부가 서로 여름휴가가 맞을 때 워터파크에 가서나 실컷 물놀이를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집 안에 있는 수영장은 아이들에게 더없이 큰 매력 포인트였을 것이다.


둘째는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이 집은 운명이다. 꼭 여기에 살고 싶다.'


여태껏 아이들 입에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이 집으로 최종 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도 한몫했다. 수영장은 우리 집 물개들에게는 분명 최고의 놀이터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 없는 시간을 노려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날은 나까지 셋이서 수영 장비 풀장착 후 내려왔다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낙엽마냥 둥둥 떠 배영하시는 것을 보고 수영장 입구에서 뒤돌아 집으로 다시 올라가는 허탈한 날도 있었다. 생각보다 입주자 중에는 시니어가 많은데, 점잖게 수영을 즐기는 분들께 민폐가 될까 봐, 그리고 최대한 3명 정도가 적당하기 때문이다. 부산스럽게 챙겨서 설레는 마음 안고 갔다가 되돌아오는 표정들은 풀이 죽어 있지만, 그 표정을 보고 서로 재밌어하며 금세 다른 놀이를 찾는다.


나는 자유형, 평형, 배영을 능숙하게 수영하지만,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일은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자유형 발차기까지는 그럭저럭 되는데, 물속에서 팔을 돌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려 숨 쉬는 타이밍을 어려워한다. 나도 그랬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귀에 물이 쪼르르 들어가면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나 역시 평형보다 자유형이 더 어려웠다.


결국 아이들은 팔은 평형, 다리는 자유형인 기묘한 수영법을 하거나, 인어공주처럼 팔을 차렷 한 채 머리와 다리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그런 수영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올챙이 같기도 하다.


기특한 녀석들이다.


튜브 없이는 물에 떠 있는 것조차 무서워하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이곳의 한여름에 도착해 3개월 동안 꼬박 렉센터 수영장을 다니더니 어느새 진짜 프리스타일 헤엄을 치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무서워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깊이 10미터가 넘는 다이빙 존에서도 겁 없이 몸을 띄우고 여기저기 헤엄친다.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겁이 나서 당장 데리고 나오고 싶지만, 한창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물속에서 10개월을 살다 태어났으니, 본능적으로 수영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월세는 사악하지만, 수영장이 있다는 것이 꽤 이점이다.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초등학교에서 배워 온 생존수영*은 이미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생존수영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위급 상황에서 스스로 생명을 지키는 능력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교육부 주도로 초등학생 대상 의무 교육이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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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 아이들이 많아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정작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본 어린이는 개인 수영강사에게 배우는 한 명뿐이었다.


아파트 수영장 풀 옆에는 한국으로 치면 뜨뜻한 물이 늘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목욕탕의 온탕 같은 것이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건식 사우나실도 두 개나 있다는 점이다. 한 방에 많으면 여섯 명쯤은 넉넉히 들어갈 만한 크기다. 수영을 하고 차가워진 몸을 온탕에서 녹이기도 하고, 사우나실을 데워 들어가기도 한다.


몇 달 동안 지켜보니 정작 수영을 하는 사람보다 온탕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늦은 밤이면 그저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러 오는 사람들도 꽤 있다.

특히 저녁 시간에 가면 온탕과 수영장은 가슴에 털이 수북한 아저씨들로 가득 차 있다.
처음엔 그 사이를 비집고 몇 번 수영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수영을 마치고 풀에서 나오는 찰나, 온탕에 앉아 있던 그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는 순간 괜히 민망해져 짜증이 난다.

그것은 규칙적으로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나의 그럴듯한 핑계가 되어버렸다.


수영장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며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휴우… 오늘도 남탕이네.”


어느 늦은 오후 40분이 넘도록 수영을 하던 우리 세 모녀는 온탕에 앉아 몸을 녹이고 있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 줄줄이 수영가운을 걸치고 수영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가운을 수영장 끝 테이블에 벗어두고는 하나 둘 온탕으로 들어왔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비키니를 입었고 중국어로 크게 떠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리는 수영은 다 했고 일어설 생각이었지만, 이들의 정체가 뭘까 궁금하기도 했다.

마치 홍콩영화에 나오는 마작 두는 여자들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집에서 마작을 두고 사우나를 즐기는 모임인가?

나이가 60대, 50대, 나랑 비슷한 40대, 그리고 20대까지 다양하게 7명 정도였다. 가족이라기엔 얼굴도 키도 피부색도 다 다른 것을 보면 입주민 중에 비키니 모임이 있나 보다.


이곳은 밴쿠버에서도 중국인 비율이 높은 도시다. 살아보니 중국인 도시, 중국인 아파트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 같다. 가끔은 여기가 캐나다인지, 중국 어딘지 잠시 헷갈릴 때도 있다. 우리 아파트 주민의 90퍼센트는 상하이, 홍콩, 대만, 동남아시아에서 온 아시아계 사람들이 꽤 많다. 그래서인지 아시안이면 서로 중국인일 거라고 짐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캐나다에 온 뒤로 어디를 가든 중국 사람들이 나에게 거침없이 중국어로 말을 건다.

그날도 어김없이 흰색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왠지 모르게 거만한 표정이었다. 비키니도 나이에 비해 꽤 젊은 취향이었다.

자리를 비켜 달라는 말이었을까.

그녀가 말을 걸자마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I’m Korean.”

그리고 덧붙였다.

“Sorry.”

어차피 나가려던 참이었기에 아이들을 앞세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왜 놀라는 걸까.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서?

어색한 웃음을 주고받으며 수영장을 나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중국인처럼 보이나?

중학교 때 열심히 했던 중국어를 다시 기억해봐야겠다.


다음엔 이렇게 말해주리라.

워 쓰 한구어런.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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