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널 버리는 건 아니야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1921년에 발표한 저서 '심리 유형 (Psychological Types)'에 소개된 MBTI는 2010년 후로 우리 사회에 인식되더니
2020년 코로나 이후 실내 활동과 온라인 콘텐츠 소비가 늘면서, 사람들이 자기 이해, 심리 테스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유행처럼 또는 너무 당연하게 인간관계 속에 스며들어왔다.
나의 십 대, 이십 대까지만 해도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향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단정하고 만나기도 전에 선입견을 갖고는 했더랬다. 언제나 우월을 가리기 좋아하는 우리는 그중에 최고는 O형이라고도 했고 그나마도 여지를 두는 이들은 여자는 A형이라며 각자의 기질과 타고난 성향을 몇 개 안 되는 혈액형 속에 가두며 서로를 이해하였다. 아니 판단하였다.
참 재밌는 것은 그러한 인식에 익숙한 나머지 처음 만나는 사람이 'O형'이라 하면 아무 이유 없이 점수를 높이 매기곤 했다는 것이다. 가장 피해를 본 그룹은 'B형'이었다. 주관이 뚜렷하다는 장점과 강점이 분명함에도 '이기적'이라는 이미지로 굳혀 인식되곤 했으니까.
특히 소개팅을 주선하고 받는 여자들 사이에서 B형 남자는 그 어떤 핸디캡 보다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당사자 모르게 혈액형만으로 취소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곤 했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B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닫곤 했는데,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잘 맞춰보려는 노력 전에 혈액형 탓을 하며 그 타입은 나랑 안 맞아라고 속단했던 어리석은 젊은 시절이었다. 그렇게 기피했던 B형 남자가 남편이 될 줄도 모르고......
어쨌든 시간은 흘러 혈액형 시대가 가고 MBTI로 인간을 이해하는 시대가 열렸다.
참말로 그 옛날 융 아저씨가 써낸 그 논문대로 인간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회사에서 team building을 하는 연말이나 분기별 워크숍에서 팀끼리 MBTI검사를 한다.
유형끼리 또는 자기 팀끼리 MBTI를 토대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친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동료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그 시간을 통해 이해되는 놀라운 일들이 실제 일어나기도 한다.
같은 유형끼리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엔 신기하기도 하고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모두가 이해하는 장면 말이다. 매니저 그룹에게는 팀원들의 MBTI가 human resource manage 하는데 정보 중 하나로 공유되기도 하였고, 그 결과를 토대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도구는 도구일 뿐, 이해하려 마음먹으면 이해 못 할 인간이 없다는 게 진실일 텐데 우리는 근거와 도구에 너무 의존적인가?
잠깐이라도 만나본 이라면 대번에 맞힐 수 있는 나는 외향적인 E성향의 사람이다.
확실히 그렇다. 사람들과 있을 때 원기가 회복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었으니 말이다. 새로운 환경, 낯선 풍경 등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고 그 새로움을 모험하는 것이 인생에서 큰 낙이라 외치던 사람. 바로 나.
그래서 내 인생에 낯가림이란 처음부터 존재한 적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그런데 말이다.
40대 중반 딱 가운데와 보니 이상하게 내가 변하더란 말이다.
이제는 정말 친숙하고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새로운 만남이 부담되고 불편하다.
에너지가 많이 뺏긴다. (이 말을 믿어주는 이가 없다. 설마, 네가?)
또 그런데 말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에 둘러 싸여 때로는 무리 속에 뛰어들어 사느라 몰랐는데
어릴 적 나는 줄반장을 하고 전교 회장도 하고 사람들 속에 있었던 거 같은데
정작 복작복작한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적엔 같이 걸을 단짝이 그리 많지 않아
외로웠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너는 친구 많으니까'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살아왔는데
겉보기에 화려한 대표자로 활동은 했어도 내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단짝은 없었다.
모두와 허물없이 친해졌지만, 내 영역 안에 들어와 마구 휘젓고 놀만한 친구는 없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내성적이고 그런 마음을 드러내며 누구에게 다가간 적이 없는 성향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내 삶에 지금까지 이어온 지인, 친구들은 모두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었다.
그런 탓에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는 나만의 동굴에 쏙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사람들 앞에서는 활기차게
사람들을 웃게 하며 호탕한 척 내 속을 철저히 가린 적도 많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나.
그들이 보는 어느 단면.
그것이 나라고 믿고 살아온 세월이 참 길다.
요즘 나는 이미 어릴 적부터 나에게 있었던 또 다른 면을 보게 된다.
이것도 나라고 받아들이며 이제부터는 척하지 않고 힘주지 않고 편하게 살고 싶어졌다.
융 아저씨도 사람이 나이 50이 넘으면 I(내향성)이 짙어진다 했는데
나를 보니 맞는 말 같다.
나는 이제 나의 새로운 면을 탐험하고 알아가는데 시간을 더 쏟고 싶다.
어느 순간,
왜 나는 늘 많은 이들에게 힘을 주려는 걸까?
왜 나한테 '밥 사줄게 나와'하는 사람은 없을까?
왜 나는 내가 힘들면서도 힘든 사람들을 먼저 돌보려고 할까?
이제는 내 삶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과 친구가 되어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지금은 내 안의 조용한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며, 삶과 사람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살아가려 한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나'를 만나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내 안에 나, E~!!기다려.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70에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