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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Dec 03. 2023

네? 전 자궁이 없는데요?

23년도 자궁경부암 검진 대상자

우리나라에는 국가암관리사업의 일환으로 국가암검진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위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그리고 2019년에 추가 도입된 폐암까지 총 6대 암의 검진을 국가가 지원해 조기 발견과 치료를 가능케 하고,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에 빛나는 질병 암이지만, 가장 흔히 발생하는 해당 암들은 조기 발견하여 치료할 경우 무려 90% 이상이 완치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중 자궁경부암의 경우, 만 20세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2년에 한 번씩 자궁경부세포검사를 지원한다. 자궁경부암 검사에는 크게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검사와 자궁경부 세포검사(cytology)가 있는데, 전자는 자궁경부암과 연관성이 높다고 알려진 고위험군 발암성 HPV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고, 후자는 자궁경부세포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2023년도 자궁경부암 검진대상에 속해, 연초부터 지금까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몇 번이나 카톡과 문자를 받았다.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대충 힐끗 보고 화면에서 지우기만 했었는데, 글을 쓰며 다시 보니 다 같은 줄 알았던 메시지 내용들도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다.

'OOO님은 23년도 자궁경부암 검진 대상자입니다.'로 시작해, 최근 2-30대의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어 그만큼 검진의 중요성이 높아졌으니 늦기 전에 검사를 받아라, 자궁경부암은 대부분 초기증상이 전혀 없어 진행이 된 후 나타나니 정기 검진이 매우 중요한 암이다, 건강을 위해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예약하시라, 와 같은 내용들이다.


가장 최근에 온 카톡에는 '올해 검진 아직 안 받으셨죠? 건강검진 가능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3.12.31일까지) 시간이 없다면 꼭 필요한 항목 한 가지라도 받아보세요.'라고 적혀있다.

<금식 zero! 본인부담금 zero! 조기에 암 발견/치료하면 건강 up!>

참, 얼마나 대단히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자궁경부암검진을 장려하고자 노력하는지 싶다. 이렇게나 열심히 검진을 받으라고 사정사정하니, 게다가 무료고, 고작 10분이면 된다니, 안 받을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내 건강을 위한 건데!




그런데 난 검사받을 자궁이 없다. 하하. 4년 차 난소암 환자이기 때문이다.

진행성 난소암은 기본적으로 '최대종양감축술'을 시행한다. 말 그대로 몸에 있는 암이란 암은 일단 모조리, 최대한!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수술을 하는데, 그 이유는 이 수술이 환자의 생존율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즉, 수술을 통해 암을 많이 제거할수록 이후 환자의 생존율도 높아진다. 그래서 난소암은 수술을 굉장히 공격적으로 하는 암이다.


나는 수술을 통해 자궁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과도 같은 양측 난소와 난관도 모조리 다 제거했다. 젊은 가임기 여성들은 난소 및 자궁 보존술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운이 아주 좋아 완전 초기에 발견했을 때나 가능하다.

그렇게 작별인사도 못하고 한순간에 떠나보낸 나의 소중한 생식기관들. 어디로 갔든, 훗날 다른 세계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한 번은 공단으로부터 카톡을 받고, 그 카톡을 캡처해서 여동생에게 보내며 (나만 할 수 있는) 농담을 던졌다.

저는 자궁이 없습니다만?(자꾸만 상기시켜 주시네요..하하.)


비록 가임력은 잃었지만, 내 동생을 포함, 가임기 여성이라면 대부분이 부러워하는 비장의 무기(?)가 나에겐 하나 있다. 바로 생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

생리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다가 가끔씩 여동생이 생리통에 힘들어할 때나, 생리대를 찾을 때, 생리 중이라 단 디저트가 당긴다는 말을 할 때, 문득 그 존재에 대해 다시 인지한다. 그리고 동생에게 얄미운 언니가 된다.

"생리가 뭐야? 난 그런 거 모르는데? 좋겠지~ 부럽지~" (동생 놀리는 게 재밌는 다 큰 언니의 모습)


물론 누구도 나와 같은 이유로 생리를 못하게 되면 절대 안 되겠지만, 나의 작은 아픔을 그냥 이렇게 재밌게 넘기곤 한다. 근데 실제로도 생리를 안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득이 있으면 실이 있고, 실이 있으면 득이 있다. 그 둘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니겠지만.


생리는 곧 가임성을 나타내고, 가임성은 곧 여성의 특권이다. 새 생명을 품고 낳을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그 여성의 상징과 같은 일을, 그 특별한 기적의 가능성을, 한창인 20대 후반에 잃었다. 이미 떠나가버린 열차에 미련은 없다. 애석하게도 나의 가임성 생존의 정 반대편에 섰고, 나에게 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그 선택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미혼이라 미련이 없는 걸 수도, 비교적 쉽게 넘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봤다. 만약 내가 기혼자였다면, 그리고 출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그 사실이 얼마나 마음 아팠을지 모르겠다. 날 닮은 아이를, 우리를 닮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나만의, 그리고 우리만의 특권이니까.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내가 자궁이 없다는 사실을, 여성 생식기관이 없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그냥 어리둥절하면서도 편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번거로운 생리도 안 하고, 자궁경부암검사를 받을 필요도 없고, 임신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고, 이런 부수적 장점들을 즐길 뿐이다. 가끔 유치하게 농담도 해가며.




이번에 자궁경부암검진 문자를 다시 보며 '검진 제외 신청'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상적 이유 또는 임신 및 출산, 입원치료, 장기 출국 등의 이유로 올해 검진이 불필요하거나 불가한 사람들을 위해 검진 안내가 발송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진작에 했으면 됐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카톡을 얼마나 받았는지! 이제 내 남은 평생 이 안내는 받을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좋아해야 하는 건가?


우리나라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기여하지는 못하게 됐지만, 암의 조기발견과 치료를 위해 국가적으로 검진을 지원해 주고 독려하는 나라에 산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이런 혜택이 가능한 수준이 된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기도 하다.


2023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혹시라도 이번 연도 자궁경부암 검진 대상자라면, 그리고 나머지 5대 암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검진을 받으시길 권해드린다. 암이라는 대표적 난치 질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방은 정기검진뿐이니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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