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al Pain 리얼 페인(2024)>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된다. 이 명제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 문장을 진리처럼 믿으며 살아온 사람에게, 이 영화는 의문 섞인 물음을 던지며 시작한다.
<리얼 페인>이라는 다소 직접적인 제목과 달리 영화는 대체로 유머러스한 톤을 유지한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밝은 톤을 유지하는 데에는 ‘벤지’라는 캐릭터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고 즉흥적인, 때로는 무모해지는 성격의 인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벤지의 모습은 바로 영화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엔딩 속 모습이다. 두 주인공이 따듯한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진 후, 영화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데이비드의 모습과 공항에 홀로 남아 앉아있는 벤지의 모습을 바로 이어 붙여 보여준다.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를 내뿜던 벤지는 공허한 눈빛으로 쓸쓸히 앉아있는데, 이는 러닝타임 내내 영화가 보여주던 주제와 상충되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말하자면 러닝타임 내내 영화가 보여준 방식은 ‘고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엔딩을 보면 '고통은 과연 나눌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고통이 온전히 나만의 몫으로 남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버겁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장례식 속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의지하며 고통을 조금 덜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조문객들은 언젠가 떠나는 존재다. 그들이 떠나고 나면 사라진 줄 알았던 고통이 다시 나만의 몫으로 남는다. 홀로 돌아온 집의 적막함과 공허함. 그 고통스러운 순간은 누군가 대신 겪어줄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나를 통과해서만, 내가 통과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고통이다.
벤지는 투어에서 만난 다른 이를 보고 “저분은 쓸쓸해 보여. 눈에 큰 슬픔이 있잖아"라며 타인의 아픔에 탁월하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엔딩을 마주하면 다른 이가 아닌, 바로 그의 눈 속에 큰 슬픔이 있음이 보인다. 그는 공항이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좋다”라고 말한다. 공항에 모인 이들은 모두 각자의 떠나는 이유와 돌아오는 이유, 헤어지는 이유와 재회하는 이유를 지녔다. 그들의 사연은 저마다 달라도, 그들이 공유하는 환희와 회환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마치 홀로코스트를 살아낸 자들의 후손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지닌 채 한 테이블 위에서 만난 것처럼, 공항에 모인 불특정 다수의 군중 또한 내가 알 수 없는 아픔을 지닌 타자다. 그런 군중 속에 섞인다면 벤지의 큰 아픔도 누군가에겐 타자 중 하나의 것으로 보일 테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공항을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프닝에서 카메라는 공항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트래킹 숏으로 보여주다가 우리의 주인공 벤지의 앞에서 멈춰 그를 들여다본다. 마찬가지로 엔딩에서 카메라는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며 군중을 훑다가 다시금 벤지 앞에서 멈춰 선다. 이것은 <리얼 페인>이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다. '고통의 타자화 - 내재화 - 그리고 다시 타자화'하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고통의 본질을 탐색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고통의 본질이란 나의 것처럼 크게 다가오는 고통일지라도 결코 내 것이 되진 못하며, 그것은 결국 오로지 살아내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이다. 때문인지 영화는 감상적인 묘사로 관객을 설득하기보다 되려 평면적인 쇼트의 나열로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방식을 택해 타자의 슬픔에서 관객을 한 발치 떨어뜨려 놓는다. 이런 엄숙한 투어리즘의 방식은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감정의 동요 없이 어떻게 타인의 아픔을 묘사하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의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다시 말하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다. 그것이 온전히 살아내는 주체의 몫이라면, 굳이 부수적인 공감이 필요하냐는 이야기다.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재해와 전쟁, 사고로 인한 고통들. 그것들에 공감하는 것이 무엇을 바꿀 수 있나? 그러나 이 영화는 데이비드라는 인물을 통해 다시 한번 반박한다.
그들의 여행은 할머니를 기리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벤지를 위한 회복의 여정이기도 하다. 극 중 그들이 언급하는 것처럼, 큰 실의에 빠진 벤지를 위해 데이비드는 시간을 내어 이 여행에 동참한다. 벤지와 데이비드 사이에는 오랜만에 만난 사촌의 관계만큼 서로를 낯설어하는 기류가 흐르지만 벤지는 여러 번 데이비드에게 고마움을 말한다. “네가 이 여행에 함께 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벤지의 이 말은 사실이다. 때론 속으로 깊게 침전하지만, 벤지는 데이비드 덕분에 이 여행을 즐길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아주 조금이나마 나아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프닝과 엔딩에는 비슷한 기류가 흐르는 듯 보이더라도, 여행을 겪기 전과 후를 절대 같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벤지는 다시 홀로 남았다. 그것은 숙명적인 사실이고 고독과 외로움을 홀로 이겨내야 하는 건 뼈아픈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섞여 있는 공항의 사람들은 먼 타자인 동시에 서로를 위로하는 가까운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슬픔 속에는 더 이상 할머니만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는 언제나 떠올리곤 했던 뉴욕에서의 밤거리뿐만 아니라 폴란드에서 함께 해메던 거리들과 데이비드도 함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리얼 페인>이 아픔 속에 홀로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