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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두나무 Nov 24. 2023

재생의 부엌(오토나쿨)

내가 나를 챙기는 시간이 왔다

결혼 전 나는 한 달에 한 번도 밥솥에 밥을 해서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홀로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핑곗거리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었고 요리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관심이 없었던 이유를 꼽으라면 음식이라는 것은 나에게 단지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먹는 것에 그리 큰 기쁨이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런 내가 결혼과 동시에 시어머님과 함께 11년을 살았다. 어머님은 나와는 정반대로 요리가 지상 최대의 취미인 분이셨고 먹는 걸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취미로 하신다기엔 한번 할 때마다 그 음식량이 실로 어머어마해서 나는 재료 손질 할 때부터 이미 지쳐있었다. 한식은 음식을 해서 내어 놓으면 한 그릇이지만 그 한 그릇을 내어놓기까지 식재료를 사서 씻고 다듬는 손질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라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어머님이 요리하시는 과정을 옆에서 온전히 나의 눈으로 보면서 음식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가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 것도 사실이다. 정확한 레시피는 없지만 주방 보조 11년 동안 눈으로 담았던 시간들은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쌓여가고 있었다. 11년간의 시집살이를 끝내고 분가했을 때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식이 식탁에 올려질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11년이란 세월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만큼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 것처럼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 시간이었다.

봄에는 멸치다시를 내고 된장을 풀어 간을 한 다음 향긋한 향이 나는 쑥국을 끓인다. 여름에는 멸치다시를 낸 다음 계란 지단을 붙이고 애호박을 볶고 오이를 채 썰고, 폭 익은 김치를 쫑쫑 썰어 설탕과 참기름에 버무려 깨소금으로 마무리한 뒤 고명으로 올린 잔치국수를 한다. 가을에는 단맛이 나는 무를 들기름에 볶아 국물이 자작하게 만들어 떠먹는다. 겨울이 시작될 때즘엔 굴에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을 풀어 청양고추를 다져 넣고 노릇하게 굴전을 부쳐 먹는다. 그렇게 제철에 나오는 식재료를 사다가 밥상을 차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결혼 전의 나를 돌이켜보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들이다.


세월은 그리고 환경은 사람을 변하게 하고 입맛도 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전혀 입에 대지 않던 음식들을 먹어보게 되고 어느 때가 되면 그 음식들이 생각나 장을 보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요리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된 건 음식이란 것이 그저 먹고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들기 전 장을 볼 때부터 재료를 생각하고, 만들며 간을 보고, 만들고 나서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입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과정에 성의가 들어가고 마음이 녹아드는 것이다. 결국엔 어떤 이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에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누구든 간에 그 존재가 가치롭다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나 혼자 먹는 아점 한 끼라도 말이다.


다른 이에게 거창하진 않지만 작은 정성이 담긴 음식을 만들어 내어 주고 그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나누어 먹는 그 시간과 그 공간의 분위기, 그때의 온도까지 나를 포함해 함께하는 이에게까지 전해진다. 음식을 통해서 함께의 추억이 한 장면 생기는 것이다.  또한 혼자서 먹는 식사 한 끼와 커피 한잔을 마실 때도 그 시간과 과정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음식이 주는 힘이 이렇게나 크다는 것을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음식을 만드는 그 과정에 마음이 들어간다는 것도 음식을 만들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부엌에서의 시간이 나에게 잔잔한 위로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오늘도 나의 아점 한 끼를 먹기 위해 김치와 반찬을 통째로 식탁에 올리지 않고 찬그릇에 먹을 만큼을 담고 수저 받침대를 놓는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원두를 갈고 물을 데우면서 오늘은 어떤 예쁜 잔에 커피를 내려 마실까 기분 좋은 고민을 한다. 그렇게 내가 나를 챙기는 시간을 정성껏 채워나간다. 그 시간 안에서 나는 유독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 순간의 행복이 바로 내가 그 시간을 기다리는 이유이다.




작가는 일본에서 1인 식사를 정성껏 만들어 먹으며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다독이고 챙겼다고 했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 지금의 나는 너무 알 것 같아 책을 읽는 내내 희미한 탄식이 떠나질 않았다. 요리 이야기인 것 같지만 요리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라 더 정이 가고, 더 깊이 있고, 더 맘깊이 와닿았다.


맥주를 사랑하고 부엌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생할 줄 아는 작가의 차분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단단한 마음에 조용하지만 힘찬 응원을 보태고 싶다. 더불어 작가만큼이나 맥주를 사랑하는 1인으로서 맥주 친구를 만난 것 같아 혼자서 내적 친밀감이 상승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p102) 일상에서 루틴을 만드는 이유는, 변함없는 반복에서 오는 안정감을 위해서다. 물론 변화를 좋아하고 즐기지만, 생활을 만들고 구성하는 큰 원칙, 즉 루틴은 나를 버티게 하는 버팀목 같은 존재다.


(p178)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좋은 기억을 나누는 것도 행복하지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기분, 생각 들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그런 과정의 즐거움, 나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작은 뿌듯함,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자기 응원이 저를 더욱 '잘 살아가는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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