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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두나무 Dec 01. 2023

아무튼, 메모(정혜윤)

나의 모든 가능성을 열고 오늘도 기록을 합니다

올해(2023년)에 접어들면서 나는 기록(글쓰기)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 기100여 개 가까이 쌓였는데 처음엔 그저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싶었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잘했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이 나를 힘들거나 슬프게 했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추억 한 자락은 무엇인지, 나의 성장과정은 어땠는지...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결국엔 내가 추구하는 행복은 무엇인지까지도 모두 기록했다. 그 기록은 유년시절부터 지금의 시간을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했고 미래의 내 모습까지 자연스레 생각하게 했다. 그것은 내가 예상치 못했던 길로 나를 데려다주었고 지금 이 순간 내가 글을 쓰고 있게 만들었다.


기록을 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를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제 모두 지나간 일이라 치부했던 학창 시절의 상처가 희미한 자국을 남기고 있는 걸 알게 되었고, 부모님의 깊은 사랑이 얼마나 나를 단단한 사람으로 일으켜 세웠는지도 느끼게 되었다. 흔적을 남긴 나의 상처를 깊이 들여다보며 그때의 나를 마주하고 어른이 된 내가 작고 쉽게 아파했던 어렸을 때의 나를 안아줄 수 있었다. 아주 사소한 기록이라 여겼지만 그것은 나에게 자그마한 기적이 되어 나를 치유해 주었다.


어렸을 적 아빠와의 추억들을 적으며 '아빠'라는 사람 자체가 인간적으로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돌아가신 아빠를 그리워하고 남아있는 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한 건강한 애도 방법을 스스로 깨우치게 해 주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생긴 엄마라는 타이틀은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지,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는데 그건 나를 내려놓는 과정임과 동시에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기록을 하며 알게 되었다. 내가 '엄마'가 되면서 '나의 엄마'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과정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나의 엄마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고 더 이해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그건 엄마라는 존재를 넘어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지는 법을 알아가게 해 주었다.


결국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적었던 모든 기록들은 나를 포함해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인간, 사물, 자연)들을 더 세심하고 더 꼼꼼히 살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게 했다. 기록하면서 너무 사소해서 소홀했던 것의 소중함을 알았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렵다는 그 흔한 진리를 알아차리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다.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이유를 알고, 더 늦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것들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과거와 현재에 머무르는 사람이 아닌 미래의 오늘을 위해 지금의 순간을 사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었다.


내가 가진 나의 모든 가능성을 열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나를 더 알아가기 위해 오늘도 나는 기록한다.






이 책의 저자는 메모를 잘하는 방법론적 접근보다 본인이 메모를 하면서 알게 된 삶의 가치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 메모와 한 몸이 되어 가는 과정을 부분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메모라는 것.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가치로운 것인지 독자에게 강요하진 않지만 살면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라는 작고도 큰 메시지를 던진다.



(p45) 메모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메모는 '자신감' 혹은 '자기 존중'과도 관련이 있다. 스스로 멈추기 때문이다. 스스로 뭔가를 붙잡아서 곁에 두기 때문이다.


(p67) 메모는 재료다. 메모는 준비다.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이다. 언젠가는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삶으로 부화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메모할지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꿈꿔도 좋다.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쓴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살지 몰라도 쓴 대로 살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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