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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두나무 Dec 08. 2023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김신지)

청승도 낭만이 될 수 있어요

정수리가 뜨거울 정도로 햇살이 내리쬐는 날을 좋아하는 나는 해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볼지언정 그런 화창한 날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비 오는 날은 그다지 반갑지가 않다. 일단 하늘이 뿌옇게 흐리고 분위기가 게슴츠레한 게 뭔가 영~~ 맘에 들지 않다. 비가 오면 몸이 쳐지고 몸 따라 마음도 처지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늦여름 즈음 하루 종일 비가 내린 날이었다. 그날은 웬일인지 꿉꿉한 마음을 박차고 일어나 일단 나가보자 싶었다. 날씨에 어울리는 뜨개 망사 가방에 책 한 권을 넣고 문을 나섰다. 아파트 주차장 쪽문에서 나가 대여섯 걸음이면 있는 따끈한 신상카페에 갈 참이었다. 그 카페가 정식 오픈을 한 후 그 앞을 매일같이 지나다니며 봐두었던 카페 창가 자리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마음에 품은 그 창가 자리에 앉을 요량으로 카페에 들어섰지만 역시나 발 빠른 자들이 이미 명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서는 카페의 남은 자리를 휙 둘러보고서는 차선책으로 다른 창가자리에 앉았다. 앉고 보니 내가 앉은자리도 꽤나 맘에 들었다.


꾸덕한 듯 쫄깃한 쿠키를 한입 먹고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음~~ 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런 호사가 어디 있나 싶어 괜스레 행복했다. 흘러나오는 노래의 제목은 알 수 없었지만 빗소리가 더해져 제법 분위기가 있었다.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후 창가 너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돌렸다. 어깨에 자기 덩치만 한 커다란 책가방을 맨 초등학생이 우산을 쓰고 일부러 웅덩이 같은 곳을 첨벙거리며 지나가는 모습, 한 손에 우산을 쓰고 다른 한 손에도 우산 한 개가 더 쥐어져 있는 어느 엄마의 모습(아마도 어린이집에 간 아이의 하원 버스를 기다리는 듯했다), 우산 하나로 서로의 어깨를 반쯤 걸친 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깔깔거리며 걷는 여중생들, 우산을 쓰고 담배를 피우다 한 번씩 허공의 먼산을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까지... 새롭지는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비 오는 날의 일상을 사는 보통의 사람들이 보였다.


창 너머 사람들을 지켜보다 가져온 책을 읽는데 제법 집중이 잘되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카페에서 책을 읽고 공부도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던 중 핸드폰 벨이 울렸다. 남편이다! 어디서 뭐 하냐는 물음에 며칠 전 같이 왔었던 집 앞 카페라고 했더니 비 오는 날 혼자서 무슨 청승이냐고 했다.  으응? 청승이라고???

아.... 낭만의 'ㄴ'도 모르는 남의 편이여!!

남의 편이 낭만의 'ㄴ'을 알 때쯤이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사뭇 그런 날이 올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비 오는 날 밖을 나가 일부러 카페를 찾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직접 나가 있어 보니 그저 생각하는 것보다 꿉꿉하지 않았고 타닥타닥 내리는 빗소리가 그런 리듬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비 오는 풍경을 창가에 바짝 다가가 앉아 보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운치를 느낄 수 있었다.  더운 여름날 얼음이 가득 담긴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것만큼이나 비 오는 날 남이 내려주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것도 꽤나 즐길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즐겨하지 않는 것, 반기지 않는 것들은 실은 하지 않으면 그만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날씨 등은 내가 바꿀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전까지의 나는 그런 환경과 날씨 등을 애써 외면하거나 그저 싫고 짜증 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비가 오면 아무것도 못하고 그날 하루를 망친다고 여겼다. 비가 온다고 해서, 환경을 바꿀 수 없다고 해서 나의 하루가 남들보다 더디게 가는 것은 아니고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흐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나의 감정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환경이나 상황, 날씨 등에 내가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나의 하루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내가 되는 것. 비 오는 날을 싫어했다면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첨범청범 걷는 아이들처럼 그 상황을 즐기거나 좋아해 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럼 자연스레 다음번 비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좋은 감정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 내가 만들어 놓은 나의 틀에 갇혀서 소중한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 것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상을 기분 좋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어떤 이의 대단히 잘나고 특별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나에게 일어났고 내 친구에게도 일어났으며 우리 엄마에게서도 일어난 그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읽다 보면 작가가 걸었던 그 길이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지 나도 걷고 싶어지고, 그녀의 시골집은 그렇게 정겨운지 나도 가서 그 평상에 앉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진다.


무언가를 사고 어딘가로 여행을 가야지만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내 삶의 행복을 쉽게 찾는 방법을 그녀의 방식대로 알려준다.


작고 소소한 일상 안에서 행복을 찾고, 그 행복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줄 아는 그녀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고 싶어졌다. 그녀 덕분에 지금을 좀 더 잘 살아내고 싶어 졌고 그녀만큼이나 나 또한 자주 행복하고 싶어졌다.


(p143) 하루치의 삶에 할 수 있는 만큼 성실할 것.

동시에 결코 오늘의 기쁨을 소홀히 하지 말 것.

언제가 끝인지 몰라 디데이를 설정해 둘 수 없는 건 삶이라는 달력뿐이다.

남은 날을 셈하며 안심할 생각 말고, 매일을 디데이처럼 살라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p237) 제대로 보지도 않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고, 볼 때마다 새로이 알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지금 막 도착한 여행자의 마음으로 걷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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