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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두나무 Mar 22. 2024

음식의 말들 (김도은)

예술이 별건가요?


한 달 전쯤의 일이다. 밤 11시 30분. 침대에 앉아있다가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오이 2개를 냉장고에서 꺼내 몇 달전 인스타에서 보고 저장해 두었던 오이절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음날 홈파티 겸 집들이가 있어서 미리 준비해 놓으면 좋겠다 싶었다.

오이 절임 한통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딸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꽃집에 가서 꽃 한 단(여러 가지 종류를 섞어)을 샀다. 집에 와 꽃을 꽂아 아일랜드 식탁 위에 올린다. 꽃 몇 송이에 집안이 화사해졌다. 기분 좋아짐은 덤이다.


필사를 하고 미리 사놓은 저녁 메뉴 재료들을 모두 냉장고에서 꺼낸다. 재료들을 씻는 것부터가 요리의 시작이다. 씻은 재료들을 물을 빼고 애피타이저부터 준비한다. 앤 다이버를 커다란 타원형의 접시에 올리고 오동통한 생새우를 살짝 데쳐 식힌 후 토마토, 양파, 바질을 잘게 썰고 소금, 화이트 발사믹, 후추, 레몬즙을 넣어 섞는다. 손님이 오시면 볼에 담긴 새우샐러드를 앤 다이버에 조금씩 올려서 식탁에 올린다.


요즘 계절에 더 많이 나오는 동죽(조개류)을 해감한 후 올리브유와 마늘, 페퍼론치노, 동죽을 넣고 간을 한 후 삶은 파스타면을 넣는다. 간이 배이도록 면수 한국자를더해 볶듯이 저어준다. 접시에 둥글고 길게 담은 파스타의 면위에 동죽과 남은 양념 소스를 붓고 마지막으로루꼴라를 듬뿍 올린다. 루꼴라는 파스타의 마지막 데코레이션과 쌉싸름한 맛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재료다. 이제 식탁으로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훈제 오리는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려 재빨리 굽고 부추무침(양파를 곁들인)을 오리 고기 위에 산처럼 수북이 쌓아 올려 자칫 밋밋하거나 느끼할 수 있는 음식에 궁합을 맞춘다. 새콤달콤한 듯 참치액이 들어가 감칠맛이 나는 부추 무침은 입안의 침샘을 자극한다.


오리구이를 다 먹어 갈 때쯤이면 편백나무 찜기를 냉장고에서 꺼내 불을 올린 후 10분의 타이머를 맞춘다. 편백나무 찜기 안에는 차돌박이, 숙주, 새송이버섯, 아스파라거스, 청경채가 들어가 있고 타이머가 울리면 새콤하고 매콤한 수제 소스에 콕 찍어 먹으면 된다.


남편이 횟집에서 사 온 모둠회도 쫄깃해서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메인 음식들이 거의 바닥을 보일 때쯤 브리 치즈를 에어프라이에 굽고 다 구워진 치즈 위에 견과류를 으깨어 올리고 꿀과 파슬리가루를 뿌린 후 옆에 딸기와 블루베리를 곁들여 디저트로 낸다.

손님으로 오신 인테리어 대표님(남편 친구) 이 한 마디 하신다.

"제수씨, 오늘은 '제수씨 오마카세'네요. 이렇게 차려진 음식을 끝없이 먹으니까 오랜만에 너무 행복하네요. 제 입이 너무 호강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거 같아요."

"음식이 입맛에 맞으셔서 다행이에요."


나는 그날 꽃을 집에 사들인 그 순간부터 예술을 하기시작했고,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접시에 보기 좋게 플레이팅 해서 식탁에 올려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함께 먹으며 행복해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예술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쓰고 그리고 연주하고 춤추는 것뿐만 아니라 진심을 다해 음식을 만드는 것,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것, 그런 사람들을 보고 뿌듯한 내 마음이 다시 나를 부엌에 서게 하는 것. 이런 일련의 과정이 내가 매번 요리를 하게 만든다. 아마도 예술이 가진 가장 큰 힘인 것 같다.










이 책은 음식에 관한 말들을 전한다. 음식은 단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 생활습관, 인간관계,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든 것을 담고 있기도 하다고 말한다. 어떤 음식을 먹으면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하고, 옛 추억 속으로 발을 담그게 하기도 한다. 입으로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가 마음에 평화를 주기도 하고 타인과의 사이를 좀 더 가깝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주린 배를 채우는 음식만이 아닌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역할까지 하는 음식은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나는 음식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음식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P157) 식생활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행위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만이 아니라 재료를 선택하고 조리하고, 차리는 것까지다. 음식을 먹거나 요리를 하는 식생활에서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 보인다. 만족감이나 서글픔, 우울과 기쁨 등도 식생활과 무관하지 않으며, 식생활로 인해 영혼이 충만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중략) 만약 내 영혼이 배고프고 힘들다면 내 식생활부터 점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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