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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두나무 Mar 29. 2024

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배신은 인간이나 하는 거지!


콩이(반려견)가 우리 가족이 된 지 1년이 조금 더 지났을 무렵 점심을 먹고 아파트 로비 층의 산책로로 콩이와 함께 나갔다. 오전에 비가 내리다 그친 오후였다. 산책로의 딱 반을 돌고 트랙 위의 벤치에 앉아 콩이랑 둘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오후 시간이면 그 길을 걸으러 나오는 아파트 주민분들이 있었고, 같은 시간대에 나가면 항상 그 시간에 마주치는 분들이 계신다.


한 5분쯤 앉아있었는데 벤치 뒤편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비를 대비해서인지 우산을 한 손에 챙겨 들고 우리가 앉아있는 오른쪽의 벤치에 앉으셨다. 콩이가 짖지 않는 편인데 할아버지의 우산이 눈에 띈 건지 어쩐 건지 할아버지 쪽을 보고는 연신 짖어댔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날까 싶었던 그때, 할아버지께서 우리가 앉아있던 벤치로 자리를 옮겨 콩이 옆에 앉으셨다. 녀석은 아까 시끄럽게 짖던 개는 자기가 아니었던 것처럼 할아버지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벤치에 앉으시며 할아버지는 물으셨다.

"이놈, 왜 이리 짖노! 야는 종이 뭐예요? 말티즈처럼 생기긴 했는데 몸이 좀 다른 거 같은데.."

"네. 말티푸라고 말티즈랑 푸들이랑 믹스한 거예요."

"말티푸! 들어본 거 같네. 야는 몇 살이에요?"

"아직 두 살 안 됐어요."

"아... 아직 어리구나. 그래 니보니까 어린 티가 난다. 이름이 뭐꼬?"

"콩이예요. 콩이!"

"콩이! 귀엽게 생겼네. 근데 야들이 사람보다 빨리 죽잖아. 개들도 사람 태어나서 죽는 거랑 똑같다니. 개들도 나이 들면 눈이 안 보이고 관절을 못쓰게 되고 장기들도 탈이 나고 그렇더라고. 나도 말티즈를 18년 동안 키웠다가 안락사시켰는데 그 애가 죽은 지 10년도 넘었어. 근데 이렇게 다른 개들 보면 그 애가 생각나네. 나는 강아지 안 좋아했거든. 내 딸아이가 미국 유학 가서 개를 입양해서 키우다가 한국 들어와서는 우리 집에 두고 갔어. 출근하고 나면 집에 사람 없이 개만 혼자 있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리 부부가 키우게 됐는데 어린애들 키우는 거랑 똑같잖아. 하나부터 열까지 손 안 가면 안 되니 보통 책임감으로는 안 되지. 사람 하나 키우는 거랑 똑같아. 나이 들면 병원도 자주 가게 되고 그래서 돈도 많이 들고. 근데 키우니 이쁘지요?"

"네. 저도 강아지 안 좋아했는데 키워보니까 너무 사랑스러워요."

"맞아. 나도 키우기 전에는 몰랐는데 키워보니 정이가고 키우던 애 죽고 나니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더라고. 한동안 우울증 같은 게 온 거 같더만... 그래서 다시 한 마리 키울까 싶다가도 이제 내가 나이가 있으니 개보다 먼저 죽을 거 같아서 못 데려오겠더라고. 내가 죽으면 그 애는 어째. 더 불쌍하잖아. 근데 내가 키워보고 느낀 게 개가 사람보다 나은 게 딱 하나 있는데 이놈들은 배신을 안 해! 절대로! 한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이지. 충성심이 좋아. 사람은 거두어 키워도 자식들도 등 돌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개는 안 그래. 그런 거 보면 배신은 인간이나 하는 거지. 개는 우리보다 일찍 죽으니까 부지런히 놀아줘야 돼. 콩아. 산책마저 하고 냄새 많이 맡고 들어가거라, 할아버지는 이제 슬슬 들어갈란다. 잘 가요~"

"네. 들어가세요. 아버님."


산책길에서 만난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의 말씀은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자연스러웠지만 살아오신 세월만큼이나 묵직했다. 그리고 '나'라는 인간은 한낱 작은 생명체인 강아지에게서조차 배울 것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어쩌면 강아지뿐만 아니라 벤치 위의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도,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도, 바람에 꽃잎을 흔드는 꽃들도 모두 나에게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보통 쓰는 일기는 내면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날의 감정들을 쏟아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감정적인 것은 빼고 그저 내 눈에 보이는 것들(사람, 동물, 자연, 물건)이나 어떤 상황 자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에만 집중하여 쓴 글이다. 참 신기한 게 읽다 보면 이렇게 사실만을 적어놓은 것에서 많은 감정들이 샘솟고 그 안에서 새롭게 깨닫는 것들이 있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둘러싼 이야기가 보통이지만 그것은 결국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잘 들으려는 마음을 가졌는지, 있는 그대로 보려는 눈을 가졌는지에 따라  세상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p97) 밖으로 노출된 빙산의 일각과도 같은 얼굴은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한다. 다른 여러 기관들과 더불어 의복 속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덩어리인 몸은 빙산의 잠겨있는 부분이다. 그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p170)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리 자신이 의식적으로 전혀 개입하지 않은 채로, 삶이란 '여러 시기들'의 연속이다. 규칙적으로 하나의 시기가 끝나면 또 하나의 시기가 시작된다.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심각한 병, 직업의 변화, 이사, 절교 등등. 흔히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는 것을,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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