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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두나무 Apr 12. 2024

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 (조안나)

자연을 닮은 글을 쓰고 싶다


정확히 5일 되었다.

거칠고 검은 가지만 보이다가 저번주에 하얀 꽃을 군데군데 피우더니 봄비가 내리고 난 후 며칠 사이에 우리 집 거실 샤시 프레임 안의 세상이 온통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샤시를 열고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잎사귀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한동안 서서 바라보았다. 거실에 앉아서도 나뭇잎들을 이유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 나도 저렇게 '자연'을 닮은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살다가 마음이 답답해지면 바다에 가고 싶어 진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밀려오는 파도에 내 근심을 함께 떠내려 보내고 싶어 진다.


길을 가다가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걸음을 멈춘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세트처럼 구름이 퍽퍽해진 내 마음을 자연스레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준다.


무더위에 땀을 비 오듯이 흘리다가도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고, 겨울날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하는 날이면 옷깃을 세우고 어깨를 움츠리며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는 엄마의 말을 잔소리로 여겼던 걸 후회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가 오면 눅눅하고 습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 나지만, 비 내리는 날 낭만도 함께 내려앉는다는 걸 알게 해 주었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은 나의 시선을 당겨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만들었고,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는 그 옛날의 순수했던 첫사랑도 생각나도 나도 모르게크리스마스를 기다리게 만들기도 한다.


저녁밥을 하거나 차를 운전하는 중에 붉고 노란 노을을만날 때면 넋을 잃고 보게 만들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그저 입을 다물게 한다.


이처럼 나의 오감을 자극하는 자연은 세상무해하다.

아침햇살, 노을, 바람, 구름, 비, 눈, 꽃, 나무, 하늘 같은 무용의 것들이 나를 또 하루 살게 하기도, 살아갈 의미를 찾아주기도 한다.


나의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힘들었던 하루 끝에 마음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의식하지 못하고 살던 삶의 작은 부분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했으면 좋겠다.

싫어했던 무언가도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바뀔 수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는 유함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다.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나의 날들이, 찌질하고 작고 사소한 후회들이 모여 우리의 일상이 된다는 걸 자연스레 느꼈으면 좋겠다.


결국 나를 살리고 살아가게 하는 건 타인에게 한번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 가족을 향한 다정한 챙김, 따뜻한말 한마디, 전화 한 통, 정성스레 만든 한 끼 같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마음' 같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소리 없이 다가가 잠시라도 머무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지만 가장 크고 쉽지만 가장 어려운 듯한 나의 바람이다.









이 책은 출판사에서 일하다 퇴사하고 프리랜서가 된 후 쉬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간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나 머나먼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를 낳아 키우며 육아에 지치고 죽도록 외로웠던 시간을 글을 쓰며 견뎌냈다고 했다. 책을 읽지 못한 날엔 일기라도 한 줄 쓰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작가의 글쓰기를 향한 집념은 여전히 쓰는 사람으로 살게 하는 동력인 것 같았다. 힘들고 슬플 때도 쓰고 나면 스스로 위로가 되고 꺼내려간 그 시간이 결코 바람처럼 가벼이 날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여러 번 강조한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나는 과연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한 번쯤 정리해 보고 싶었다.


인생은 쓰지만 글로 써두면 달콤해진다는 그녀의 말을 믿으며 줄곧 경험하고 싶어 진다.




(p85) 나밖에 쓸 수 없는 글이라는 것이 보일 때까지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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