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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두나무 Apr 05. 2024

식탁 위의 고백들 (이혜미)

나에게 '밥'이란


어릴 때부터 먹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는 빼빼 마르고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네다섯 살쯤이었을까? 달달한 맛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구르트'도 안먹고 빨대를 꽂아주면 혓바닥으로 홱 밀어냈다는 엄마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밥은 내게 그저 주린 배를 채워주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 혼자 살 때는 배달로 시켜 먹는 것도 지겹고 나가서 먹으려니 귀찮은 맘에 감기약처럼 생긴 알약 한 알만 먹으면 한 끼 식사를 한 것처럼 배가 불렀으면 좋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밥'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건 결혼을 하고 시어머님과 함께 살다가 분가를 하면서부터였다. 모든 요리를 잘하시고 매일 많은 양의 음식을 하시는 시어머님과 함께 살 때는 그것이 그저 매일 내가 해야 하는 '의무'같은 것이었다.


밥을 하는 주체가 되기보다 해놓은 밥을 먹는 손님의 입장에 가까웠다.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이고 김치를 담그시는 어머님 옆에서 주방 보조를 해야 하는 시간이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분가를 하고 두 달 뒤쯤 전국적으로 '코로나'가 퍼지면서 자연스레 집에서 밥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횟수가 많아졌고, '밥'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서서히 주인의식을 갖게 되었다.


하나씩 만들어지는 요리를 보면서, 맛있게 먹는 아이와남편을 보면서, 밥을 하는 게 이런 재미도 있는 거구나 라는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코로나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면서 돌아서면 밥을 하고 돌아서면 밥을 해야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은 무엇을 해먹을지 메뉴를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밥'이란 것이 그저 끼니만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내 집(우리 집)이 생기면서 친한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초대해 밥을 해서 함께 먹고 즐기는 시간을 보냈는데, 그 시간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건 내가 '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타인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타인에는 남편도 포함된다. 남편과 언성을 높여 말다툼을 한 뒤 저녁 시간이 되어 집으로 오는 남편을 위해 그가 좋아하는 스팸찌개를 끓이고, 계란찜을 만들어서 저녁상을 차렸다. 그때의 밥은 나에게 화해의 제스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의 하루 일과를 나누거나 아이의 고민을 듣는 시간. 바로 밥 먹는 시간이다. '밥'이란 걸 함께 먹으며 나의 하루가 마무리되기도 했고, 누구와 함께 먹느냐에 따라 또 다른 추억의 한 장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밥'이란 것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단지 먹는 즐거움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내가 결혼을 하고 직접 요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유독 말로 하는 표현이 서툰 나는 '밥'을 통해 내가 정성들여 써놓은 편지를 전달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전한다.


오늘 저녁은 무엇을 해서 먹어야 할지 매번 고민하게 만드는 게 '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장고를 열어 있는 재료들을 꺼내 씻고 자르고 양념해 한 끼 식사를 만들게 하는 원동력 또한 그 '밥'에 있다.









작가는 우리가 흔히 아는 식재료나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들의 어원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신만의 철학을 함께 글로 담아낸다. 요리를 하는 과정, 그 과정 중에서 중요한 팁이나 포인트도 알려주기 때문에 요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메모를 하며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흔히 볼 수 있는 요리 에세이와는 결이 조금 다른 느낌인데 식재료와 요리를 대하는 자세가 시를 쓰는 시인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식재료와 요리들을 다시 보고 먹고 마시게 되었을 때, 예전과는 어떻게 다른 시선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게 될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의 똑같은 재료와 요리를 가지고도우리 모두는 '밥'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거나 평가한다. 그 이유는 각자 음식에 대한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식하거나 판단하기 때문이다.



(p106) 요리. 나를 위해 하는 요리는 맛도 없었다. 혼자 해놓고 혼자 먹는 음식에는 '보람'과 '뿌듯'이 빠져 있었다. 유년의 골짜기를 조금씩 헤쳐 나와 새로운 사람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기 시작하면서, 사이와 차림새라는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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