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고 말하는데, 겪어본 바 피할 수 없는 일은 즐길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피할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난 그럼 '빨리 해치워라!' 라고 할 것 같다. 근데 해치우는 것도 내맘처럼 빨리 할 수 없을 때는 또 어떻게 해야할까. 그때는 버텨야된다. 정말 죽어라 버텨야 되는 때가 그때가 아닐까.
뉴질랜드에서 3년 반 정도 레스토랑 매니저로 일하고 영주권을 신청한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이제 영주권 여정의 끝자락까지 거의 다 왔고, 좋은 소식만 남았겠다 싶던 차에 내 담당 이민관은 정말 '헉'소리 날만큼의 추가 서류를 내게 요구했다. 그때는 이민관이 나 영주권 안 내주려고 일부러 괴롭히는 것 같고 얼른 뉴질랜드를 떠나라고 나를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꾹 참고 견딘 시간들이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무너질 수는 없다고 울며 불며 낼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면서 간신히 그 고비를 넘겼다.
근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영주권 승인 여부의 결과는 언제 발표가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영주권은 전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안 될 일에 내가 왜 이렇게 붙잡혀 있어야 하지? 그냥 다 포기하고 떠나야되나?' 마음은 이미 뉴질랜드를 떠났는데, 그래도 해온 시간과 노력이 있어서 차마 발을 빼지는 못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뉴질랜드 남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당시 그해 10월이면 당연히 영주권 승인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미리 예약해 둔 여행이었다. 이걸 선견지명이라고 해야하나,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하며 나는 더 자주 울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는 왜 나를 받아주지 않는거지...'
Photo by. Mandy
그러다 호수가 예쁜 테카포라는 지역에서 며칠을 머무는데, 시간이 남아 그곳에 있는 한 산을 찾아 올랐다. 산 이름은 마운트 존(Mount John). 인스타그램에서 보니 이 산 위에 별을 관측하는 곳도 있고, 풍경도 아주멋져 보이길래 꼭 가봐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Photo by. Mandy
근데 문제는 올라가는 내내 좁은 오솔길만 계속 되는거다. 같이 올라가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유명한 산이라면 올라가는 길이 이렇진 않을텐데 싶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계속 올라가도 이 똑같은 오솔길만 나올 것 같으니 '내가 시간 낭비하는게 아닐까, 그냥 이쯤에서 내려갈까?' 싶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운동화마저 내 발에 작아 여기서 무리 하다 다음 여행 일정을 망치는건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올라온 게 아쉬우니 그냥 한발 한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Photo by. Mandy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때부터는 나를 불안하게 하던 의심이나 걱정이 다 사라지고 오직 풍경 자체를 즐기고 있는 내가 그곳에 있었다.
Mount John 정상, 박효신의 Home을 들으며 바라보던 풍경
마침내 그 산의 정상을 만났을 때 대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박효신의 'Home' 이라는 노래가 헤드폰에서 울려퍼지는데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꿈을 꾸고 있나봐-' 로 시작하는 가사를 듣자, 나약하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때, 누군가 나에게 힘을 내라고 이 순간을 선물해준 것만 같았다.
그때 이후로는 종종 영주권 여정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에 나는 이 산을 떠올렸다.
'어쩌면 난 아직 다 오르지 않은 것이다.
한 걸음 더 내딛고 풍경이 달라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지금의 어려움은 다 잊을 수 있을 것이다.'
Photo by. Mandy
당시 난 낭떠러지에 손가락 두 개로 매달려있는 듯한 기분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것만 놓아버리면 내가 편해질 것 같은데, 나는 포기하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 바보 같다고 자책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 산을 만나던 날, 난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다. 산을 올라온 내 한 걸음, 한 걸음, 지난 4년간 매일 매일의 내 선택 때문이었다.
지난 시간동안 나에게 영주권은 그 자체로 꿈이었고, 그걸 위해 도전을 계속하겠다는 선택을 난 매일 해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 힘들다고 포기해버리면 오늘의 내가 마치 과거 몇 년 동안의 나를 죽여버리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힘들고, 서러워도 '영주권만 받고 나서 그 다음에 하고 싶은거 다 하자!' 라며 영주권 하나만을 바라보던 과거의 내가 안타깝고 애틋해서 나는 차마 포기할 수가 없었다.
Photo by. Mandy
그러다 정말 딱 미치기 일보 직전에 이 산을 만났고, 이 산 덕분에 잘 버티다가도 내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불안한 날들이 계속되고, 모든게 후회된다고 혼자 소리내서 울기도 하고 또 긍정의 힘에 기대어 억지로 웃어보기도 하며 그렇게 미친 나날들을 반복하다 끝내는 아무 생각 없이 단지 오늘 하루만을 살자고 다짐하며 버티던 어느 날, 나는 영주권 승인 통보를 받았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건 버티는 것 뿐이던 그 나날이 마침내 끝나던 순간이었다.
나는 내가 포기하지 않고 버텼던 그 시간이 마냥 자랑스럽거나 뿌듯하지 않다. 인내하고 버텨내며 누군가 자신은 더 강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상황에 따라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바닥을 칠 수 있는지를 몸소 겪으며 나는 내 마음 하나도 마음대로 못하는 고작 '인간'이라는 걸 오히려 많이 느꼈다. 피할 수 없어서, 즐길 수도 없어서, 빨리 해치울 수도 없어서, 그렇다고 차마 포기할 수도 없어서 난 죽기 살기로 버티긴 했지만 그 이후로 한 동안 나는 내게 다시 그와 같은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게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산 정상을 밟는 것이라 표현하고, 누군가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것이라 표현하는 그 모든 여정들은 우리가 피한다고 피해지는게 아니라 다만 오롯이 겪어내야 하는 일이라고. 내가 다만 포기하지 않고 버텨봤기 때문에 배운게 있다면 나는 분명 '끝'이 있다는 것을 목격했고, 그 '끝'을 만나고나면 당시의 고통은 시간과 함께 대부분 잊혀진다는 사실이었다. (건강을 제외하고는)
분명한 끝이 있다는 걸 믿기가 당시에는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왜 당시의 고통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을까. 그 날을 이렇게 추억할 수 있는 오늘에 다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