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오후 삼청동 카페를 가기 위해 인사동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한 좌판대를 정리하는 여자를 보는데 20살의 내가 생각이 났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주말 알바로 나드리 화장품 판촉 알바를 했었다. 명동 한복판에 좌판을 깔고 '간단한 설문조사 하시고 음료수 받아가세요!'를 외치던 시절이었다. 벚꽃이 만개하던 시즌에는 여의도 공원 입구로 보내졌다. 누군가는 벚꽃이 흐드러진 여의도 공원을 걷는 걸 보면서 '나도 주말에 알바를 안 해도 되는 때가 오면 꼭 저들처럼 여의도 벚꽃을 봐야지!' 했었는데 아직 그걸 한 번도 하지를 못했다.
좌판을 정리하는 여자를 보며 그때 생각이 났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나는 과연 내가 바라던 어른이 되었을까?'
사진: Unsplash의Sage Friedman
내가 원하던 어른은 자유롭고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얼마든지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내가 하기 싫은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자유,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하고만 하하호호 웃을 자유. 그리고 그렇게 자유로우려면 시간과 돈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간과 돈 둘 다 많고 싶다는 욕심을 '여유'라는 말로 아름답게 포장 했다.
언제부터 그런 어른이 되기를 꿈꿨냐면, 그건 아마 고등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다. 체육 시간은 끔찍하게 싫고, 반장이 피자 돌리지 않는다고 뒤에서 수군대던 같은 반 아이들이 미워도 그 앞에서는 싫은 티도 못 내던 그때, 대학만 가면 싫은 과목 안 들어도 되고 굳이 모두와 잘 지내지 않아도 되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 가고 싶은 산토리니, 뉴욕, 프라하도 가고, 사고 싶은 것도 다 살 수 있을 테니까.
나만 열심히 하면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어른이 될 줄 알았던 나는
어느 날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도대체 엄마 아빠는 어떻게 그만큼이나 살아낸 건지 그게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할 때,
인생은 고통이라는 부처님의 말이 더 이상 도통 이해 안 되는 말은 아니게 되었을 때,
1 더하기 1이 꼭 2가 나오는 게 아니라 때로는 0이 되기도 때로는 10이 되기도 하는 게 사람 일이라는 걸 혼자 생각하게 되었을 때,
자유 뒤에는 어마어마한 책임이 따른다는 걸 느낄 때,
고고해 보이는 여유, 그 아래 계속해서 헤엄쳐야 하는 노동이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나 못지 않게 모두는 열심히 살고, 성공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걸,
운이 철저히 나를 외면하는 때가 있기도 하다는 걸,
내 눈에 미운 그 사람도 그 사람 인생에서는 주인공으로 산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모든 순간들에조금씩 어른으로 성장했다.
사진: Unsplash의Jeremy Bishop
파도가 여기까지 오지는 못할 거라고 자신만만해 하며 공을 들여 튼튼히 세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의 그 어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파도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내가 어릴 적 꿈꿨던 어른의 모습은 인생길이 쉽지 않다는 걸 모르고 세운 모래성 같은 꿈들이었다.
나는 내가 바라던 어른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못한다. 그럴 수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하고, 그때 내가 말했던 어른으로 살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여전히 꿈꾼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은 자유롭고 여유로운 사람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언젠가의 그날을 위해 오늘도 별 수 없이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