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인생이 우릴 가만두지 않고 흔들 때가 있다. 나는 가만히 내 정원을 가꾸고 있는데 갑자기 장갑차가 내 정원을 밀고 들어오는 것 같은 일,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조심조심 걸어가다 말고 옆에서 쌩하고 달리는 자동차에 빗물을 옴팡 뒤집어 쓰는 것 같은 일. 그 일이 일어난 이유와 내 행동의 인과관계를 찾아보려 해봤자 그저 내가 그때 거기서 그 사람을 만나서 혹은 내가 그때 그 장소에 있어서가 전부인, 그래서 오직 똥 밟았다는 표현만이 가장 정확한 일이 우리 인생에 종종 일어나고는 한다.
정말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다. 처음 그런 일을 겪었을 때는 굉장히 당황스럽고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나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좀 겪다 보니 일의 금전적, 정신적 피해 정도에 따라 분류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이 정도는 똥 밟은 정도다, 이 정도는 똥물을 내가 쓴 정도다.'
사진: Unsplash의Sarah Kilian
처음으로 '똥을 밟았다!' 는 생각이 들게 했던 일은 10여년 전 약수동 엔젤리너스 커피에서였다. 창가 자리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난데없이 커피를 맞았다. 내 뒤 테이블에서 가출했던 중학생 딸을 잡아와 훈계하시던 아저씨가 너무 화가 나셨는지 커피를 창가로 집어던지셨는데 바로 그 앞에 내가 있었던거다. 그 커피에 노트북이며 책, 옷, 머리 다 젖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집어던진 그 커피가 유리컵이나 머그는 아닌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컵에 담겨있어 더 큰 피해는 없었지만, 나는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커피 벼락을 맞았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했었던 그 일은 경찰이 오고, 이후 노트북 수리비를 아저씨께 받으며 수습이 됐었다.
뉴질랜드 살면서는 똥을 밟았다기보다는 똥물을 뒤집어 쓴 적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새벽 2시쯤 혼자 쓰고 있던 4인실 호스텔 방에 약에 취한 여자 노숙자가 무단으로 들어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날은 낮에 있었던 다른 똥물을 뒤집어쓴 일로 밤새 친구와 통화를 하며 내가 깨어있던 덕에 어찌저찌 큰 피해 없이 넘어갔다. 이제는 그 날 낮에 있던 똥물을 뒤집어 썼던 일이 노숙자가 내 짐을 털어가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잠을 자고 있을 수 있었던 일을 막아준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진: Unsplash의Khamkéo Vilaysing
여러 번 똥도 밟아보고, 똥물도 뒤집어써보면서 이제는 내게 일어나는 일을 분류하기도 하고, 이 일이 나쁜 일의 시작을 알리는 경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더 나쁠 수 있었던 일을 액땜해 준 것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이 경보든 액땜이든 그 무엇이라 해석되던지 간에 그것과는 무관하게 나는 한동안은 혼란스러운 상태로 바짝 엎드려 지낸다. 돌다리도 다시 한 번 두드려보는건 말할 것도 없고, 당연하다 여겼던 일상의 평온함에 감사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어김없이 좋은 일은 찾아올 것이하는 믿음과 함께.
갑자기 집을 옮겨야 되는 일이 생기거나 갑자기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는 일을 당한 뒤에는 새로운 곳을 만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하는 것이 그런 나쁜 일들의 순기능이었다. 똥을 밟거나 똥물을 뒤집어 쓰게 해서 입고 있던 신발이나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신발이나 새 옷을 입게 하는 거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이란 놈은 생각보다 세서 나는 웬만하면 바짝 엎드린다. 맞붙어 싸우고 싶은 생각도 없고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고 따져서 물어봤자 대답도 안 해준다. 그냥 내 선에서 '또 이렇게 바람이 세게 부는 시기가 왔구나!' 하고 그 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이제는 똥 밟는 일의 순기능을 읊을 수 있다 해도, 내가 똥을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할 수만 있다면 그 모든 나쁜 일들은 최선을 다해서피하고 싶다. 어쩌면 똥 밟는 일로 더 큰 화를 무마시켜줬을지도 모를 인생이 듣는다면 조금 속상할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