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디 Jun 16. 2023

그땐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몰라서

나도 모르게 부리고 있는 허세

어느 날 친구 꾸꾸와 보이스톡을 하다 지난 날 우리가 목격했던 누군가의 '허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술자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주량에 대한 허세, 비싼 브랜드의 옷을 입었는데 그 브랜드를 알아봐준 친구에게 '너 이런 브랜드도 알고, 뭘 좀 아는데?' 라고 친구를 치켜세워 줄 때의 허세, 뭔가를 고민 하고 있다는 지인의 말에 내용은 들어보지도 않고 '야, 고민하지마. 그냥 질러, 뭐 어때!' 라고 말할 때의 그 허세까지.


그 당시, 우리는 왜 그렇게 멋있고 쿨하고 싶어했던 건지. 10년도 안되어 허세라는 이름으로 불려질 것들에 대해 우리는 어찌나 진심이었던지.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 날의 허세에 대해 이야기 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지금도 있을텐데, 우리도 모르게 부리고 있는 허세가.'     


사진: Unsplash의Oscar Keys


우린 항상 지나고서야 안다. 뭘 모르고 있었는지, 뭘 놓치고 있었는지. 나도 그랬다. 취업난을 겪으며 광고인으로 살 것이라는 굳은 결심이 바스라졌고, 이별을 겪으며 절대 이 사람과는 헤어질 일이 없을 것 같다던 나의 예감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이리저리 생각해서 가장 똑똑한 선택을 내렸다고 믿었던 일에서 오래 괴롭기도 하고,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일이라 낙담했던 일이 잘 마무리 되었을 때 생각했다. '모든게 뻔히 보인다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내가 뭘 모르는지조차 몰랐었구나.'


내가 당시 몰랐던 것들이란 노력이나 의지보다 중요한 상황의 힘, 비이성적이기도 한 것들, 효율성의 측면에서 보면 납득하기 힘든 것들,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오묘한 것들. 그래서 왜 사는 일이 이런거냐고 백발의 노인에게 물으면 그저 '원래 인생이 그런거지 뭐...' 라는 답을 들을 법한 것들. 그것들이 인생에는 꽤 중요한 순간에 빈번하게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그랬다. '나는 어쩌면 이제껏 나는 다 알고있다는, 내 노력이면 다 될 것이라는 허세와 오만을 부려왔구나. '


사진: Unsplash의Sydney Heid


그로부터 얼마 뒤 꾸꾸에게 다시 카톡을 보냈다. '나 우리가 지금 부리는 허세가 뭔지 찾은 것 같아.' 꾸꾸가 그게 뭐냐고 물었고, 나는 우리가 늘 푸념처럼 하는 '나는 이제 나이가 너무 많아!' 라고 하는 것이 허세인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에는 난 이제 지금도 내가 놓치는 부분이 분명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만큼의 나이가 되었다는 거드름이 섞여있다는 점과 5년 뒤만 해도 그때 고작 35살이었던 주제에 무슨 나이가 많다고 했었냐고 할 나를 생각하니 이건 명백히 허세가 맞다고 결론 내렸다.


잠시 후 꾸꾸가 그랬다. '진짜 동감이다’. 



이전 07화 이제는 5년, 10년을 이야기 하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