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시간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
뉴질랜드 떠나고 2년 3개월 만에 한국을 방문했던 2016년, 내가 28살이던 그 때 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친구가 그런 얘기를 했다. '난 2년이면 그래도 우리의 많은게 바뀔 줄 알았는데...' 당시 석사 공부중이던 그 친구의 현실도 뉴질랜드에서 영주권을 받아보겠다고 동분서주하던 나의 현실도 2년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에는 그 어떤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었던거다. 그때는 아직 때가 오지 않은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당시의 그 친구와 나는 오랜 시간을 들여 도전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던게 아닐까 싶다.
요즘은 나를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시간을 생각할 때, 그 숫자가 점점 커지는 걸 느낀다. 초중고 12년간, 학년이 올라가는 성장을 매해 경험하다 1년 투자해서 재수를 하면 행여나 늦어지는게 아닐까 고민하던 20대 초반의 우리에게 1년이라는 시간은 많은걸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년에는 고등학생이었고, 내년에는 군인이 되는 친구들에게 한 해 한 해는 참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을거다. 그렇기에 2년 3개월이면 뭔가가 달라져도 한참은 달라져야 하는 시간이라고 당시의 나나 내 친구는 믿었을 수도 있다. 근데 그랬던 20대를 지나고 나서 30대가 된 지금은 뭔가 달라지려면 최소 5년은 걸리겠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자리를 잡는데는 최소 10년은 걸린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 친구들을 만날 때면 몇 년 전과는 뚜렷이 달라진 친구들의 변화를 들을 수 있다. 몇 년 전 부동산 스터디를 한다고 했던 친구는 몇 년이 흘러 서울에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했고, 몇 년 전 작은 회사지만 많이 배우면서 회사에 다닌다고 했던 동생은 몇 년이 흘러 이직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좋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을 했다고 했다. 두 친구 모두 최소 5년 이상은 부지런히 공부를 해왔거나 경력을 쌓아왔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어떤 면에서 나는 좀 더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커리어를 바꾸는데 있어서도 오래 걸리겠구나. 공부하고 취업하고, 회사에 적응하고 또 배워나가는 그 지난한 과정을 5년은 해야 이제 조금 보인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좀 더 긴 호흡으로 꾸준히 하는게 중요하겠다.'
20대 처음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5년은 해야 네가 원하는 조건의 회사로 이직할 수 있어!' 라고 했다면 그때는 5년이면 너무나 까마득한 시간이라 생각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하다보면 5년은 금방 지나가는 시간이라는 것과 원하는 걸 성취할 수 있다면 5년의 시간을 투자하는 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 모든 것이 그 긴 시간을 살아내 본 경험 속에서 찾아온 연륜이 아닐까 싶다. (연륜이라 쓰고 혼자 피식 했다.)
친구 꾸꾸는 작년 7월 호주로 대학원을 갔다. 10년 전 이맘 때 당장 앞으로 뭘 하고 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던 친구였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3개 국어에 능통한 IT 인재가 되었다. 호주에 가고 나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꾸꾸는 '앞으로 5년이 중요해. 이 5년을 잘 보내야지.' 라고 했다. 내심 역시 꾸꾸도 30대의 연륜을 바탕으로 시간을 보는 폭이 넓어졌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가 그랬다. '이제는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며 뭔가를 계획할 때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 앞으로 5년을 잘 보내고 나면 뭔가 확실히 달라져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