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계절은?
2016년 2월, 한국에 휴가차 들어가 오랜만에 친한 동생을 만났을 때였다. 요즘 다니는 회사는 어떤지, 일은 할 만한지 이것저것 서로의 근황에 대해 업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동생은 얼마 전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말하며 내게 '언니, 이제는 싱글 라이프를 좀 즐겨보려고. 요즘은 퇴근 하고 발레학원 다니고 있어.' 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듬해 2017년 5월, 그 동생은 결혼을 했다. 나와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을 알게 됐다고 했다. 2018년 11월에는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내가 3년쯤 지나 그 동생을 다시 만날 때, 싱글라이프 즐겨보겠다던 그 동생은 아들의 유모차를 끄는 남편과 함께 나를 만나러 나왔다.
가끔 사람마다 다른 계절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심어놨던 씨앗들이 쭉쭉 커나가는걸 볼 수 있는 여름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짝 엎드리고 웅크려야 하는 겨울을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 동생이 삶의 굵직굵직한 이벤트들을 하나 하나 해나가는 동안 나는 영주권 취득 하나에만 매달렸는데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3년을 살았었다.
어릴 때는 '때, 시기, 계절' 그런거 다 상관없이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살다보니 그게 마냥 그렇지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21년도 당시 새해 목표는 내 당시 상황을 고려해 무리해서 일하지 않고 하루 하루를 건강하게 보내는 것이었다. 내가 느끼던 당시 내 인생의 계절은 겨울이었다. 그래서 겨울잠 자러 동굴로 들어간 곰 같은 마음으로 새해 목표를 세웠다.
근데 그 한 해를 마무리 하게 되었을 즈음에는 그 해는 겨울이 아니라 봄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많이 나눴던 그 해는 돌이켜보면 동굴로 기어 들어간 내 뒤로 갑자기 친구 곰들이 동굴 앞으로 몰려와 '지천에 꽃이 피는 봄이 됐는데, 그 안에서 뭐해! 이제 나와서 우리와 놀자!' 라는 외침을 듣는 한 해였다.
나는 겨울이라 생각했는데 세상은 봄이 되었을 때,
나는 쉬어가는 한 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세상은 나를 키우려 하는 해일 때,
나는 싱글이고 싶었지만 세상은 좋은 짝을 내게 보냈을 때,
나는 많은 걸 이루고 싶었지만 세상이 나를 쓰지 않는 때일 때.
세상이 나를 살게 하는 계절은 이렇게 내 마음과 조금씩 어긋나기도 하는 듯 하다. 확실한 건 내가 예상했던 계절보다 실제 계절이 더 추울수록 힘들었다는 거다. 여름을 예상했는데 시베리아 한파가 찾아왔을 때, 그럴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준비하면서 또 다른 때를 기다리자 했었다.
누군가에게 올 한 해는 갓 취업해서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 없던 해였다고 할 수도, 나는 많은 걸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따라 주지 않아서 조금은 답답했던 해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올 한 해가 끝나면 그 모습이 좀 더 뚜렷이 보이지 않을까. 이제 그 중반쯤 왔다. 올 한 해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어떤 계절을 살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중간 점검 한번 해보려 한다.
곧 2023년도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