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참 많은 말들이 있다. '두드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 라고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고, '두드려서 열리지 않으면 그건 당신의 문이 아니다.' 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상황이 꼬였을 때, 문제를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보다 때로는 그대로 두는 편이 좋기도 하다는 의미로 물에 빠졌을 때는 몸에 힘을 빼야 뜰 수 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는 하고, 치즈에 빠진 생쥐가 포기하지 않고 허우적거리다가 끝내는 치즈가 굳기 시작해서 그 치즈를 딛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는 하기도 한다.
어떤 조언들은 오히려 하나만 알 때가 편했다 싶기도 하다. '될 때까지 해야 하는 거구나!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내야 하는 거구나!' 근데 그것만 맞는 답이었다면 그 대척점에 있는 말들이 회자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사진: Unsplash의Keegan Houser
내가 나의 고민으로 짓눌려 본 뒤, 세상에는 다 맞는 말도, 다 틀린 말도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 상황에 어떤 말이 더 맞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선택을 하긴 하지만 끝내는 결과를 통해서 배우는 것 아닐까. 물론 지금의 결과를 통해 배운 교훈을 다음 번에 비슷한 상황에 적용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똑같이 풀리는 건 또 아니지만. 매번의 문제가 참 그런식이다. 그래서 겪는 게 많아지고, 아는 게 많아질수록 오히려 자신이 옳다는 생각과 어떤 상황에서건 100% 통용되는 진리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자연스럽게 흐려지기 마련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지만 꼭 이렇게 사는 게 정답은 아니었다라는 걸 살면서 느낀다.'
'나는 이런 신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남들이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스파를 하러 갔다 앤드류라는 이름의 할아버지와 얘기를 잠깐 나눴다. 시드니에서 10여 년, 홍콩에서 10여 년을 살았고, 첫 번째 부인과는 7년의 결혼 생활을, 두 번째 부인과는 35년의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계시다는 할아버지는 당시 여든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께 그랬다. '제가 할아버지 손녀라고 생각하시고 인생의 조언을 건네주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겠어요?' 할아버지가 그냥 'Be a good girl!' 이라고 하셨다. 뉴질랜드 할아버지였지만 신선을 만난 기분이었다.
하실 말씀이 왜 그것뿐이셨을까. 나보다 몇 배는 더 사셨는데. 할아버지께도 본인이 믿던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고 그 반대의 이야기가 맞기도 하다는 걸 겪어오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가지쳐지고 결국에 착하게 살라는 이야기 딱 하나 남은 게 아닐까 싶었다.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고, 거기에 '정답은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때 더 조심하게 된다. 고민 이후의 누군가의 선택에 대해서도 함부로 얘기할 수 없음을, 누군가의 고민에 대해서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타박할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이건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다. 답답한 마음에서 조언을 구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
사진: Unsplash의Keegan Houser
이제는 누군가가 내게 자신의 고민을 내게 털어 놓을 때, 기필코 정답을 찾아주리라는 예리한 눈빛으로 귀를 쫑긋 세워 듣기 보다는 사는건 참 지랄맞다고 함께 잔을 부딪혀주는 쪽을 택하려 한다. 그러다보면 고민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마음이 기우는 쪽을 이야기 하기 마련이더라.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싶다. 굳이 내쪽에서 욕심을 내자면 어줍잖은 내 조언보다는 그 사람이 고민 끝에 내린 선택에 부디 행운이 따라주길 바라는 것 정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