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행동 보고서

by 맨디

- 요즘 웬만한 내 방에 침입한 벌레는 살려둔다. 개미, 거미, 나방 등. 오타니는 운마저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도 줍고 다녔다는데, 쓰레기는 못 주울 망정 살생이라는 아주 나쁜 짓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기대했던 회사에서 실망스런 결과를 통보 받은 날은 해당사항이 없다. 신고 있는 쓰레빠로 아주 있는 힘껏, 벌레에게 분풀이를 한다.


- 몇개 회사에 지원했는지 그 갯수를 세어본다. 130개가 넘었다. 이정도 취업 혹한기에도 큰 멘탈의 무너짐 없이 잘 넘어가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건 필히 영주권 취득 고난기 때 생긴 단단한 맷집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며, 역시 세상에 버릴 경험은 없다고 뒤늦게 6년 전 나에게 또 박수를 보낸다. 미래의 지원서 200개를 쓰고 일자리를 구할, 혹은 300, 500개? 모르겠다, 하여튼 그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박수를 또 보내고 있겠지. 이런 박수 말고, '오!!! 취업 됐다!!!' 하는 박수를 치고 싶고, 취업 축하한다는 박수를 받고 싶다.


- 네트워킹을 하는 자리에서 현직자에게 '취업이 참 쉽지가 않네요.' 라고 말하는 것 보다 '제가 4개월 동안 135군데 지원을 했는데 최종 면접까지는 딱 2번 갔어요.' 라고 데이터에 기반한 숫자로 말하는게 현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하는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정말 그 인내와 끈기가 대단하시네요!'


아, 그런 말을 듣고자 말한건 아니었지만, 이왕지사 저의 인내와 끈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사실 제가 이 바닥에서 소문난 인내와 끈기의 여왕이라 이 정도 어려움은 새발의 피인 것 같은게 바로 6년전 제가 영주권 신청 했을 때 달마다 빌런이 1명씩 등장해서는 아주 저를 죽어라 죽어라 때리는 시기가 있었는데... 아, 이건 어째 데이터에 기반한 숫자로 표현이 안된다. 고통의 정도를 객관적 수치로 표현할 수 있으려면 가능하려나. 지금 구직 상황보다 그때가 100배는 더 힘들었다고 말하면 그나마 와닿으려나, 그래도 이 구직 상황은 상상이라도 가능하니까.


아니 근데 내가 인내와 끈기의 여왕이라는걸 왜 상대가 알아야 하며, 나는 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상대에게 뭘 얻고자 하는것인지 나에게 묻고 싶어진다.


'정말 × 100, 인내와 끈기의 여왕다우시네요!' 를 듣고 싶은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 근데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늘 이런거다. 때론 불안해하고 내맘이 내맘같지 않아 끙끙대면서도 나를 다독이고 나의 일상을 지켜내려 안간힘 쓰며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우리 다 그렇게 죽을똥 살똥 고비들을 넘어가며 사는 것 같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런 이야기 포장지에 싸여 있지만 사실 나 정말 많이 힘들었다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까지. 그렇다고 처음 본 사람에게까지 이 이야기의 무게를 전가할 필요는 없으니 이건 아주 가까운 나의 사람들에게만. 이번 주말에도 꾸꾸와 긴 통화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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