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 기지에 찾아온 새벽의 여신
대한민국은 남극에 두 개의 상주기지가 있다. 남극 서북부에 위치한 세종기지와 동남극에 있는 장보고 기지다. 난 서류 지원 시 장보고 기지를 1 지망으로 지원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장보고 기지에서만 볼 수 있는 오로라와 은하수다. 그들을 며칠 전에 드디어 봤다. 오로라는 태양폭발로 방출된 입자들이 지구의 자기장에 끌려들어 와 고층대기 입자들과 충돌하여 생기는 현상이다. 자극에 가까운 남극 장보고 기지에서는 관측이 비교적 쉽다. 아직은 시기가 일러서 사진으로만 뚜렷하게 보이지만, 한 두 달 지나면 육안으로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자연현상을 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은하수는커녕 별도 보기 힘들다. 하지만 해군 복무 시 망망대해에서 야간당직 때 봤던 은하수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학업을 했지만, 그만큼의 은하수는 본 적이 없을뿐더러 별도 몇 개 보지 못했다. 맑은 공기, 소금기 깃든 바다냄새를 맡으며 느끼는 고요함과 적적함 그리고 검은 바다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보는 은하수. 대학교 1학년을 갓 마친 20대 초반의 나는 이 은하수의 소중함을 느끼기에는 경험과 감수성이 너무 부족했다.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난 한 인간으로서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남극 월동연구대 지원서를 쓸 때 문득 지금의 나는 은하수를 보면 어떤 울림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대학에 갓 들어갔을 때 난 미생물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을 통해 우리 인간을 더 깊게 이해하고 싶었다. 여기서 ‘그들’이란 우리 장속에 서식하는 미생물들이다. 이 작디작은 생명체들은 장 속에서 비타민도 합성하고 우리의 신경세포들과 소통하고 호로몬 분비를 조절하는 등 우리들의 자아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장을 제2의 뇌라고도 한다. 그래서 장건강과 정신건강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이들을 깊게 이해하면 우리 인간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깊은 생각을 가지고 이 학문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여러 고전을 읽고, 많은 사람을 겪고, 학계에 살짝 발을 담가보고, 판데믹을 경험하고 30대가 되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내 나름의) 깨달음을 얻고 인간에서 자연으로 눈을 돌렸다. 환경 미생물학 석사 연구도 결심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내 내면과 소통을 많이 해보면서 우주생물학까지 오게 되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 고민하고 미생물들의 분자를 통해 행성과의 공진화를 이해하고자 한다 (실제 우주생물학 연구 주제다). 분자라는 매우 작은 것으로 아주 큰 행성을 보며 큰 그림의 질문을 하며 고민하고 연구하고 싶다.
장보고 기지는 이 지구상에서 우주와 가장 가까운 곳 중 하나이지 않나 싶다. 장보고 기지는 극지방의 자기력이 우주의 입자들을 초대해 지구와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활동을 직접 보여주는 곳이다. 오로라가 보이지 않는 날에는 은하수가 보인다. 지금의 나에게 장보고 과학기지가 선사하는 오로라와 은하수는 깊은 울림을 준다. 참으로 아름답고 경이롭다. 광대한 은하수의 한 창백한 점에 불과한 곳에서 일상의 사소한 고민을 하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인공위성도 보인다. 스타링크일 가능성이 크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남극에서도 느리지만 인터넷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시간도 가졌다. 별똥별도 많이 보인다. 은하수에 사로잡혀 소원은 빌지 못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오로라의 초록빛과 붉은빛은 태양에서 방출된 입자들이 대기의 산소 원자와 충돌해서 생긴다. 이 산소는 지구에 생명이 탄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부터 미생물(그리고 식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문득 오로라는 태양과 그 작디작은 생명체들이 준 선물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방에서 책을 보다가 계단 몇 개만 올라가면 은하수와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