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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gram Nov 21. 2024

[Review] 그리움을 추억으로, 추억을 희망으로

공연 "바람으로의 여행"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그리움을 남긴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건 없기에 때가 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사람도 물건도 그리고 특정되는 무언가도 모두. 다만 사라지는 것들은 매번 그리움을 남기기에 우리는 그리움을 추억할 무언가를 찾게 된다.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은 많은 이들에게 그리운 사람으로 남아 있는 가수 김광석의 노래를 만날 수 있는 공연이다. 그의 노래를 통해 각자가 생각하는 그리움을 어떠한 방식으로 형상화하는지 직접 느껴볼 수 있다.     

     


가수 김광석을 동경하는 서인대학교 신입생 ‘풍세’는 밴드 동아리인 바람밴드에서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합격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곳에서 그는 풋풋한 연애를 하기도 하고, 열심히 연습해서 가요제에 나가기도 한다. 노래를 향한 열정으로 꿈을 키우며 다양한 추억을 쌓아간다.   

  

하지만 찬란한 기쁨만큼 암울함도 곧이어 따라온다. 학생운동의 여파로 밴드부원 중 한 명인 ‘겨레’의 사망,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인해 음악의 꿈을 잠시 접은 ‘영후’, 사랑의 아픔을 겪는 ‘풍세’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은 바람밴드의 해체까지 이른다.      


가수 김광석이 남긴 노래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서사는 단연 그의 곡과 함께한다. 처음 풍세가 밴드 오디션을 보며 불렀던 “그날들”, 사랑을 노래하며 사람을 떠올리는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각자가 흩어진 쓸쓸함을 기억하는 “서른 즈음에” 등 가사 대부분은 등장인물들의 상황과도 알맞게 들어맞는다.   

  

김광석의 노래 대부분은 그리움을 소재로 한다. 마음 한편에 그리움과 그에 따른 아픔을 품으며 그것이 잊혀지길 바라지만 잘 되지 않는 심정을 노래한다. 보고 싶은 것에는 사람뿐만이 아닌 지나간 세월과 청춘도 함께 하는데, 인생에서 멀어져가는 것들은 인간 의지로만은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간의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공연의 후반부는 힘든 시절을 보낸 후 흩어진 바람 밴드가 다시 모여 노래를 부르는 장면과 함께한다. 힘든 시절 속에는 개개인의 일을 넘어 국가의 크고 작은 사건들도 모두 있었다. 전광판에 빠르게 지나가는 김광석 사망 사건을 비롯해 삼풍백화점 붕괴, 한일 월드컵, 세월호 사건 등을 비추며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는 사실이 몸소 다가온다.     


어떻게든 그 시간을 꿋꿋이 버텨내며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던 이들은 다시 모여 아무 걱정 없는 그때처럼 웃으며 노래한다. 꿈 많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랫소리는 이번이 지나면 언제 또 들릴지 모르지만, 그들은 순간에 충실하며 노래와 악기가 어우러진 연주를 완성해나간다.    

  

공연을 보며 김광석의 노래를 하나씩 들어보면 그가 단지 그리움만을 노래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그 속에는 사람과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지만, 그는 동시에 희망을 함께 노래했다.      


삶의 한 가운데에서 왜 힘든 일은 언제나 오는지, 사랑하는 이는 왜 영원히 곁에 머물 수 없는지, 찬란한 순간은 왜 항상 끝이 있는 건지 등의 수많은 물음표 속에서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살아왔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차가운 시절을 극복하고 그 속에서도 즐거움과 희망이 있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을 테다.   

   

그의 노래는 이런 힘이 있다. 점점 멀어져가는 세월 속에서 무엇이 남아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그만큼 따스한 순간이 다시 올 것이라는 의지를 샘솟게 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의지는 지난날의 그리움을 극복하며 얻어낸 무언가와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는 희망에서 발현된다. 이 모든 순간이 우리 삶의 일부였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과 같다.   

  

 


공연은 어느 순간에 김광석의 목소리를 AI로 복원하여 들려준다. 영상 속에서만 간간이 접했던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걸 듣고 있자니 만약 살아 있었다면 지금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작게나마 지금껏 남긴 노래를 들으며 그를 추억하고 그리움을 발산시켜 본다.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그동안 시간 속에서 떠나보낸 사람, 아무 이유 없이 멀어진 사람, 여전히 그리운 사람이 모두 담겨있다. 그럼에도 늘 새롭게 다가온 사람, 이유 없이 가까워진 사람, 그들과 피워낼 새로운 희망 또한 들어있다. 그 모두를 생각하며 오늘도 기약 없는 사랑과 희망을 떠올린다. 다시 만난 바람밴드가 언제일지 모르는 시간을 기약하며 또다시 노래하기로 약속했던 그 순간처럼.



https://www.artinsight.co.kr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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