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기-20251227

by Alcide Mio

지난 주말부터 긴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휴가를 맞아 며칠 면도를 쉬었더니, 낯선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검은 수염 사이에 자리 잡은 흰 수염들. 짐작은 했지만 직접 마주하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잠시 이대로 둘까 고민하다가 결국 면도를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새치가 있어 흰 머리카락은 익숙했지만, 흰 수염을 마주하니 마음 한편이 조금 서글퍼지더군요. 마치 또 다른 세월의 흔적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이 그린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초상화가 떠올랐습니다. 1527년에 그려진 이 그림 속 그의 수염에도 희끗희끗한 세월이 담겨 있습니다. 화가 한스 홀바인이 이 초상화를 그린 것은 모어가 50세 되던 해이니, 지금의 저보다 젊었을 때입니다. 아마 제 빰에도 오래 전부터 흰 수염 자라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저 매일 면도를 하며 세월의 흔적을 애써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이겠지요.

001.jpg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 없는 이상, 우리는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성탄절이 지나니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 나네요. 모두 따뜻하고 편안한 연말 보내시길 빕니다.


*이 그림은 뉴욕 시티의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맨해튼에 오시면 보통 메트로폴리탄이나 모마(MOMA) 미술관을 많이 찾으시지만, 메트로폴리탄의 남쪽에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프릭 컬렉션에도 주옥같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거대한 규모와 인파에 압도당하기 쉬운 메트로폴리탄과 달리, 이곳에서는 훨씬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작품 하나하나를 오롯이 맞이하는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아래에는 프릭 컬렉션에서 소개하는 이 그림의 링크입니다.

https://collections.frick.org/objects/100/sir-thomas-more


화, 목, 토 연재
이전 04화그림 읽기-2025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