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둘째 날, 사장님도 다른 알바생들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덕분에 여유도 조금 생겨서 다른 알바생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 같은 장소에서 알바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연들을 가지고 있을까?
보라씨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보라씨는 나보다 한 살 어린 23살이었다.
"남자친구랑은 얼마나 만나셨어요?"
"음... 한 1200일 정도 됐을 거예요."
주변에서 듣던 사람이 모두 놀랐다.
"와... 그럼 군대도 기다리셨겠네요..."
"네...ㅎ 스무 살 때 cc로 만났어요."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스무 살에 연애를 시작해서 몇 년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부러웠다.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충실했을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연애도 보라씨처럼 되길 바랐다.
그 이후부터는 보라씨도 조금은 말문이 트였는지 이런저런 내게 이런저런 말도 걸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다른 사람들과는 어색했는지 은근슬쩍 내가 있는 쪽으로 와서 서있길래 놀리기도 했다.
정우씨는 19살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알바를 한다고 했다.
"혹시 운동하세요? 몸이 좋아 보이시는데...?"
"앗... 네 저 헬스 조금 해요."
"오~~ ㅋㅋㅋ 어쩐지 몸이 좋더라. 그럼 혹시 체대 준비하는 거 아니에요?"
"체대도 원래는 준비했었어요. 1년 정도. 근데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어요."
19살이면 한창 놀고 싶을 나이일 텐데 헬스도 하고, 알바도 하면서 자기 관리를 하는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다. 일도 어린 나이에 성실하게 열심히 했다.
문득 내 학창 시절 생각이 나기도 했다. 대입이 마치 인생의 전부처럼 보이던 시절, 지금 돌아간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것 같다. 단순하게 눈앞의 목표보다 더 큰 꿈을 그려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가까운 물체가 크게 보이는 법이니까.
지연씨는 29살이었다. 동안이라 나이를 들었을 땐 놀랐다. 여자의 나이는 참 가늠하기 어렵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근데 말투가 참 특이했다. 처음엔 외국인인가? 싶을 정도로 톡톡 튀는 말투였다. 근데 이름이 지연이라길래 그냥 신기한 사투리인가 생각했다.
"고향이 어디세요?"
"안 알려줌 :P"
... 뭐지 이 사람? ㅋㅋㅋ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평소에도 그렇고 참 장난기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툭툭치곤 말했다.
"사실 베트남에서 왔어요."
"아~ 진짜요? 근데 한국말 진짜 잘하신다. 전 그냥 사투리 쓰시는 줄 알았어요."
지연씨가 빵 터졌다. 다만 내가 실례가 되는 질문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지생활 하느라 힘들 테니 친근하게 잘 대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연씨도 그런 내가 편했는지 나한테 장난도 치고, 말도 많이 붙였다.
날씨도 쌀쌀해지는데 밤늦게 퇴근하는 다른 알바생들을 위해서 핫팩을 사갔다. 이 핫팩과 우리가 나눈 대화가 추운 마음을 조금 녹였길 바랐다.
✽ 작 중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