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마음을 충전하는 나의 퀘렌시아
집에서 책을 읽으면 집중이 잘 안 되는 편이다. 책을 읽다가 책상이나 책장에 먼지가 보여서 갑자기 시작한 걸레질이 대청소로 이어지는가 하면, 침대 위에 엎드려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읽기 위해 집밖으로 나간다.
꽤 오랫동안 카페에서 책 읽기를 즐겨왔다. 카페라는 공간은 언제나 내게 영감과 안식을 준다.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일컬어 ‘퀘렌시아’라고 하는데, 카페는 내게 일종의 퀘렌시아였다. 특별히 커피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개인의 삶이 진득하게 농축된 우리 집과는 다르게 카페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공유 공간이니만큼 늘 쾌적하고 산뜻했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은 단조로운 일상에 특별한 쉼표를 남기고, 거칠한 내면을 매끄럽게 다듬어 주었다. 그래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올 때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개운하고 후련했다.
그동안 여러 카페를 전전하던 끝에 알아낸 책 읽기 좋은 카페의 조건이 있다. 첫째, 공간의 규모와 상관없이 인구 밀도가 낮아야 한다. 한마디로 한산한 곳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손님이 나뿐이라서 주목받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 멀찍이 한두 명의 손님들이 떨어져 있는 게 마음 편하다.
둘째, 가사 없는 잔잔한 뉴에이지나 재즈 연주곡들이 흘러야 한다. 귀에 익숙한 가요는 책을 읽는 도중에 속으로 따라 부르게 되니 곤란하다.
셋째, 카페 주인(또는 직원들)의 시야가 닿지 않는 자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카페에 혼자 가면 이상한 자격지심이 올라온다. 일행 없이 혼자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페 안 어디서나 카페 주인의 움직임이 보인다면, 괜히 눈치가 보인다. 커피 한 잔 달랑시켜 놓고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책이나 노트, 필기구 같은 걸 막 늘어놓은 내가 혹시 진상으로 보이진 않을지 '자기 검열'을 한다. 실제로 그 누구도 일개 손님인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늘 밝은 미소로 환대해 주었다. 하지만, 테이블 회전율이란 게 있지 않나? 그래서 영 마음에 걸리면 음료를 한 잔 더 시키곤 한다.
언젠가 카페에서 세 시간 넘게 자리를 지킨 적이 있었다. 반쯤 남은 책을 완독하고 새 책을 꺼내 읽으며 노트에 이것저것 쓰다 보니 어느새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점원들이 테이블을 닦고,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자리를 정돈했다. 이상한 자격지심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손님이 나밖에 없어 보였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할까? 앉은자리가 가시방석이 되려는 찰나, 건너편 구석진 자리에 다른 손님의 머리가 삐죽 보인다. 칸막이로 되어 있어서 미처 몰랐다. 그때부터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래도 혼자 너무 오래 앉아있는 게 미안해져서 커피와 디저트를 한 번 더 주문했다. 눈치 보지 마! 난 커피를 두 잔 마신 손님이라고!
새로 오픈하는 카페가 있으면 꼭 한 번씩 방문해 본다. 그리고 온전히 독서 생활자의 관점에서 카페를 둘러본다. 테이블 크기와 높이는 책 읽기에 적당한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귀에 들리는 음악은? 카운터와 가장 먼 자리의 상태는? 마지막으로 커피 맛은? 이곳이 또 하나의 퀘렌시아가 될 수 있을지 검토한다.
퀘렌시아는 원래 투우장에서 싸움에 지친 소들이 잠시 쉬는 공간에서 유래된 말이다. 잘 쉬고 나면 다시 싸우러 나가야 한다. 언젠가는 퀘렌시아에서 빠져나와 진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카페에서 책을 읽고, 커피 한잔을 바닥이 다 보이도록 싹싹 비우고, 마음을 고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차피 마주해야 하는 나의 삶으로 당당하게 돌아가기 위해.
마녀의 서랍_여덟 번째 칸
저자가 수년간 같은 장소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경험한 에피소드와 감정들을 기록한 <카운터 일기>는 독자를 순식간에 뉴욕 브루클린의 어느 카페로 데려다 놓는다. 책을 읽는 동안에 열심히 커피를 내리고, 카페를 청소하고,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뉴욕 바리스타의 일상이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지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카페에 드나들면서 나는 한 번도 카운터 너머의 삶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가 거쳐 온 수많은 카페의 바리스타 또는 사장님들에게 나는 어떤 손님으로 비쳤을까? 그들의 살뜰한 배려 덕분에 내가 나만의 퀘렌시아를 제대로 누릴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예전의 나는 '단골'의 범주에 속하고 싶지도, 내 삶의 영역에 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단골이란 '제가 늘 마시는(또는 먹거나 찾는) 것으로 주세요'라고 해도 척 내어주는 매우 친밀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나는 친밀해지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두려웠다. 그저 낯을 가리기 때문이었을까? 지나치게 내향적인 탓에 무수한 익명성 뒤에 숨고 싶었을까? 아무튼, 나는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어도 단골로 간주될까 봐 자주 찾지 않고 여러 곳을 전전하는 편이었다. 주인장이 나를 알아보고 평소보다 더 환대해 주면 기분이 좋았지만, 그러한 환대가 부담스럽고 황송해서 발길을 끊게 될 때가 더러 있었다. 깊은 관계에 대한 두려움. 그게 저변에 깔려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달라졌다. 나는 단골로서 주인장들과 안면을 익히고 나를 드러내는 것에 거부감이 사라졌다. 내 안에 어떤 변화가 생긴 건지 나이가 들면서 변죽이 좋아진 건지 알 수 없지만, 단골이 주는 내밀한 편안함에 만족한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을 향해 내 마음이 열리고 있다.
문득 이 책을 나의 단골 카페 주인님들에게 선물하는 상상을 했다. 이 책을 읽고 어쩌면 카페에서 일하면서 쌓인 고단함이 조금 풀리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우리 사이에는 카운터만큼의 거리가 있었고, 그 간격을 유지할 때 카페라는 공간에서 서로의 행복을 조용히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쪼록, 어딜 가서도 진상 손님은 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