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좋은 장소2_내독 내차

내 독서는 내 차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

by 예온 YeOn

나는 운전을 늦게 배웠다. 그전까지는 운전을 못 해도 불편함 없이 잘 살아왔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그냥 걸어갈 때도 있었다. 이동할 때 선택지는 언제나 둘 중 하나였다. 걷거나 남의 차에 실려 가거나. 그런 삶이 마흔 살 이전까지 계속됐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왜 운전면허를 따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딱히 필요 없는 것 같다며 얼버무렸다. 그런 내 대답에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운전면허를 따고, 내 차를 갖게 되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고. 나에게는 차를 살만한 큰돈이 없다고 얘기하자,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요즘 누가 일시불로 차를 사? 다 할부지.’라고 말했다.


마흔 살을 앞둔 어느 가을,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때 나는 무슨 일로 인해 복잡한 심경이었고, 그 감정을 흐트러뜨릴 구실이 필요했다. 결심은 곧 실행으로 이어졌다. 한 번의 필기시험, 두 번의 기능시험(안타깝게도 1회 실격), 마지막으로 도로 주행시험을 거쳐 당당하게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새로 나온 운전면허증의 감촉이 반들반들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3년 후에 내생에 첫차를 장만했다. (물론 5년 할부로.)

소위 ‘오너 드라이버'가 되고 나서 사람들의 말이 거의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니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마트에서 장을 본 후에 집까지 낑낑거리며 짐을 옮기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고, 기분이 울적할 때 차를 타고 훌쩍 드라이브를 나설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내 차가 생기니 일의 능률도 올랐다. 그 당시 취재를 위해 이동할 일이 많았던 나는 차가 있는 다른 직원의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곤 했다. 그게 내심 불편하고 미안하기도 했는데, 내 차가 있으니 눈치 볼 필요 없이 내 계획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 차가 생기고 가장 좋았던 점은, 타인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차에 타는 순간,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가 될 수 있었다. 사회적인 표정을 지우고 진짜 나의 얼굴이 되는 곳, 여러 가지 감정으로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벗어나 나 하나만을 바라볼 수 있는 곳, 내 차는 (철학자 몽테뉴의 표현을 빌리자면) 훌륭한 뒷방이었다. 뒷방은 본연의 나로 지낼 수 있는 내밀한 공간을 의미한다. 그 뒷방에서 야금야금 즐기는 독서는 역시 꿀맛이었다. 바다가 지척인 지역에 사는 특혜로, 나는 종종 차를 몰고 해변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커피도 마시고, 물멍도 하고, 책을 읽는 것이 하나의 소확행이었다. 시동을 끄고, 음악도 없이 적막에 가까운 차 안에서 오로지 책에 집중하는 시간은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오해는 금물! 책을 읽기 위해서 차를 소유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핵심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내 책상이 아무리 높은 가림막에 둘러싸여 있어도 언제든 누군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며 말을 걸 수 있으니 진정한 ‘뒷방’이 될 수 없다. 나는 함께 사는 가족이 있어서 내 방에 틀어박혀 있어도 가족과 연결된 기분이 든다. 아는 사람을 마주칠 수 있는 공공의 장소도 마찬가지. 뒷방은 외부요소가 쉽게 넘어서지 못하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걸 내 차에서 발견했을 뿐이다. 그러니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공간을 찾으면 될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잠시 혼자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나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할 여정이다. 그 고독한 과정은 나에게 생각의 자유로움을 선사하고, 나 자신을 더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다 보면 내 안에 무게중심이 생기고, 외부의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봄이 시작되고 바람도 다정해지고, 바다의 빛깔도 더 청량해졌다. 좋은 책 하나 골라서 차를 타고 길을 나서야겠다.


마녀의 서랍_아홉 번째 칸

자발적 고독 (올리비에 르모 저, 돌베개 출판)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보면서 생각한다. 주인공처럼 내가 아무 준비 없이 홀로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나는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잘 살아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두려움과 불안, 외로움과 쓸쓸함이 뒤섞인 삶이 과연 행복할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될 것이다. 영화 ‘캐스트어웨이’를 통해 극단적인 고독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에게는 고독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구해내는 시간 말이다. 우리는 가끔 타인의 평가와 요구에 휩쓸려 진짜 자신을 잃어갈 때가 있으니까.

<자발적 고독>은 불가항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극단적인 고독이 아니라, 군중 또는 사회와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건강한 고독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는 ‘가게 뒷방’이라는 은유로 사회와 고독에 대해 설명한 철학자 몽테뉴의 관점이 마음에 와닿았다. 가게는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공적인 장소이고, 뒷방은 가게 주인의 개인적인 공간이다. 우리는 그렇게 가게와 뒷방을 함께 공유한 삶의 주인이고, 그 두 장소를 골고루 오가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존재인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고독은 결국 잠시 타인을 등지고 나에게 의도적으로 집중하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자발적으로 사회로부터 멀어져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자발적인 고독은 연대의 의미와 가치를 더 소중히 돌아보게 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

나는 절대로 무인도에서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이다. 반면,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필요 이상의 감정 소모를 원하지도 않는다. 홀로이면서도 함께이고 싶다. 그런 이중적인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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