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렬독서의 묘미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나는 좋아하는 두세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한 통에 담아 먹기를 즐긴다. 시원한 맛의 민트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달콤한 맛의 초콜릿 아이스크림으로 넘어간다. 새콤한 과일 셔벗으로 개운함을 느끼고 이 순서를 무한 반복한다. 두 가지 이상의 맛이 섞이는 게 싫어서 오직 하나의 맛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 같은 사람은 동시에 다양함을 만끽하는 걸 선호한다. 그러니까 짬뽕을 시켰을 때, 남의 짜장면도 한 젓가락 꼭 맛보고 싶은 심보랄까?
독서를 할 때도 그런 심보는 적용된다. 한 권의 책을 진득하게 읽을 때도 있지만, 두세 권을 동시에 읽는 병렬독서를 좋아한다.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이 책 저 책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시간을 정해서 전혀 다른 책들을 읽는 것이다. 낮에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읽고, 밤에는 완전히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읽는 식. 같은 장르의 책을 번갈아 읽기도 한다.
내가 병렬독서를 선택하게 된 건, 읽고 싶은 책은 계속 쏟아지는데 읽는 속도는 그만큼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번 눈에 들어온 책은 반드시 읽어봐야 직성이 풀렸고, 그런 순간은 자주 찾아왔다. 다양한 책을 폭넓게 훑어보고, 그때그때 마음 상태에 따라 적절한 책을 읽고 싶었다. 마치 그날그날 듣고 싶은 플레이리스트가 다른 것처럼. 화장실, 침대 머리맡, 가방 속, 차 안, 책상 등 손길 닿는 곳곳에 다양한 책들을 비치해 둔다. 내가 시간을 자주 보내는 장소에서 책을 펼치고 싶게끔 미리 책들을 심어두는 것이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바로 책을 펼칠 수 있는 나름의 장치이기도 하다.
주제가 다른 두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지 않냐고? 요일별로 여러 드라마를 번갈아 보아도 줄거리를 꿰고 있지 않은가? 독서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따로 읽은 두 책의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사고의 확장을 도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병렬독서의 짜릿함을 느낀다. (실제로 소름이 돋을 때도 있다.)
물론 무조건 병렬독서를 고집하는 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 권의 책에 푹 빠질 때도 있다. 읽는 속도는 평소보다 두 배는 빨라진다. 내가 책인지, 책이 나인지, 작가가 내게 하는 이야기인지,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하는 이야기인지 모르는... 그런 몰아의 경지를 운 좋게도 경험한다. 어디를 가든지 그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닌다. 완독 하지 않고서 다음 책으로 넘어갈 수 없는 책들도 있다. 그런 순간을 기다리며 열심히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는 것 같기도.
마녀의 서랍_일곱 번째 칸
나는 ‘실용성’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생산성’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에는 약간의 죄책감마저 든다. 무슨 일을 하든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착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내용을 세세히 기억하기보다 독서의 과정에서 떠오른 생각과 감정에 더 충실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유용함을 따지는 마음 한편과 계속 싸워야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뒹굴뒹굴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러고 나면 하루를 허투루 쓴 것만 같아 괴로워한다. 그런 나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위로를 준 책이 있다.
평소 병렬독서를 좋아해서 몇 권의 책을 같은 시기에 읽는 걸 즐기는데, <문학의 쓸모>와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라는 책을 번갈아 읽으며 공통된 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책은 학문의 실용성을 따지는 이 시대에 문학은 왜 필요한 것인가를 흥미롭게 저술했고, 두 번째 책은 ‘유익한 산만함’을 주제로 지나친 성과지향주의가 창의성을 어떻게 가로막는지를 보여준다.
두 책을 읽으면서 ‘무용’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된 ‘과정’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겨울에 이불속에서 읽는 소설,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플레이리스트, 천천히 걸으며 풍경 구경하기, 자기만족에 쓰는 글들, 기타 등등.
문학, 음악, 취미, 몽상 같은 실용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은 순간들도 나라는 우주에 반짝이는 별들이 아닐까? 또 모르는 일이지. 그 별들을 탐사하는 동안 나의 새로운 우주를 발견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