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홀로인 나를 누군가가 알아봐 주고 반가워해주는 것
Finland 2014. 08.17 페트리 아우라모씨 집.
해가 질 때쯤이다.
주유를 마치고 편의점 입구 쪽으로 모터바이크를 이동시켰다.
눈길은 바이크를 바라보며 점검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하룻밤을 어디에서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쏠려 있는 중이었다.
옆으로 앉아있는 건설 노동자 차림의 두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색한 웃음이 살짝 오고 갔다.
여행자나 노동자나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기 힘든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며
모터바이크에 시선이 쏠려 있는 젊은 노동자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나의 여정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자신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라트비아 국적이다.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핀란드로 넘어와 도로 건설, 유지 보수 등의 노동 일을 하고 있다고.
돈을 조금 더 벌면
누이가 살고 있는 호주로 이주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의 눈빛과 말과 몸에서 에너지가 느껴진다.
2014년, 대륙을 횡단하면서 만난
많은 젊은이들의 꿈이
호주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옆에 앉아
말없이도 호감을 보이며
담배 피우고 있는 나이 먹은 남자는 핀란드인이다.
그들이 어디론가 사라지자
모터바이크를 탄 중년의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반가운 표정으로 가볍게 악수하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다. 다른 곳에서처럼 일제 바이크이다.
언제 들어갔는지 모르는 세 번째 남자가 편의점 안에서 나왔다.
내게 말을 건다.
모터바이크에 새겨진 이동루트를 보여주자
자신의 집이 17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함께 갈 수 있는지 물어왔다.
내게서
1만 킬로미터가 넘는 러시아 구간을 감당해 왔다는 것은 유럽 구간에 대해 더 이상 긴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이곳은 북유럽이다.
그의 손에는 달걀 꾸러미가 들려 있다.
귀국 후
자료를 정리하며
구글 지도에서 그날의 주유소를 찾아내었다.
사진과 구글 지도를 통해서도
그의 집의 위치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다음날
그의 집으로부터
유럽 북단으로 북상하는 간선도로까지
이어진 길(지선)을 촬영하면서 자료화했지만
같은 길을 여러 번 헤매는 바람에 기억의 끈이 약간 끊어져 있다.
물론
지금 당장 그들과 SNS를 통해
주소를 알 수 있지만
틈이 날 때마다 반복해서
그때 그 장소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그의 집으로 연결되는 길들을 좁혀가고 있다.
그 집의 엄마 ‘사리’씨는 초등학교 선생님.
지멘스에 다니는 남편 ‘페트리’씨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편의점에서 구입한 달걀은
요리사의 꿈을 가지고 있는 막내아들의 요청 내용이었다.
그 가족과의 만남 이후로 6년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중학생이던 막내아들의 꿈이 계속해서 이어져 가고 있을까.
‘아우라모’씨 댁에서 나와
유럽 최북단을 향해 북상하면서 며칠이 흘렀었다.
북극권 너머로 깊숙이 들어와 ‘이나리’라는 이름을 가진 자그마한 마을과 만났다.
주유 후 편의점 밖 입구에 놓인 의지에 앉아 뭔가를 좀 먹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향해
시선을 맞추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젊은 여성이 매우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함께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페이스북을 열어 보여주었다.
‘사리 아우라모’씨가
자신의 페북에 나에 대해 쓴 글과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사리씨가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 은사라고 말을 했다.
극동의 어느 점에서 태어나 살아온 내게
핀란드 북극권은 그야말로 듣보잡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면서
오랜 시간 홀로인 나를
누군가가 알아봐 주고 반가워해준 것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메시지로 다가온다.
**사리 아우라모씨가 자신의 페북 친구들에게 공유한 글
주유소에서 Petri가 만났다는데 창고 안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동안 머물 수 있는 것이 허용되는지 묻는 Petri. 당연히 Petri가 그를 초대했어. 한국에서 오토바이 타고 여기까지 왔던 멋진 녀석. 밥도 먹고 ‘알바르’가 구운 케익에 커피도 마시고 지금은 페트리가 사우나로 안내중. 그리고 밤동안 그를 텐트에서 머물게 하지 않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