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조금 흔들어주는 이를 좋아해요. 살랑바람에 나뭇잎 한 장이 쓱 얼굴을 스치고 지나는 것 같은 낯선 감각, 어! 이거 뭐지? 하고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그런 정도 말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나를 마구 흔들었어요. 어깨를 잡고 내 눈을 똑바로 봐! 하고 흔들어 댔어요. 잠을 뒤척이고 신열에 들떠 당신한테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날이 여러 날이었어요. 빠져나오기는커녕 끝도 없는 당신의 심연 속으로 마구 끌려 들어갔죠. 그거 알아요? 아릿한데 쾌감이 있는, 가려운 것 같기도 하고 아픈 것 같기도 한, 묵직한 통증 속에 숨은 알싸함, 중독성이 있는 쓴맛 같은,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누르면 아픈데 그 속에 실려 오는 짜릿한 쾌감 때문에 자꾸만 상처를 건드리게 되는, 그러다 고인 농을 배출하듯 밑바닥에 있는 욕구를 발설하게 되는, 내가 당신한테 중독되어버린 이유도 그거였어요. 당신을 만나버린 지난 몇 달은 태풍이 휘몰아친 것 같았어요. 그래요 태풍이었어요. 내 모럴의 기준을 바닥까지 뒤엎어 의식의 배설 생태계를 새로 만들어준 태풍….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또한 도발하게 했지요.
쿤테라*씨! 모든 연애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갈망한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나는 지금 당신의 무게를 감당하는 중일까요? 오래, 좀 더 깊이 당신을 느끼고 싶어 시간이 멈추는 법을 연구하기도 해요. 당신의 움직임, 미동조차도 놓치지 않으려고 호흡을 멈추고 눈을 감아요. 그 아뜩함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그저 눈을 감아요.
왜 자꾸 눈을 감느냐고요? 당신이 그랬잖아요. 얼굴이란 육체적 메커니즘이 집결된 계기판에 불과하다고. 나는 그 계기판에 의존하지 않고 당신께로 가보고 싶어요. 당신 숨소리, 당신 냄새, 당신 살갗, 당신의 맛, 당신의 가장 깊은 곳, 심연에 내 생을 던져보고 싶어요.
멈추지 말아요. 쿤테라 씨! 육체적 사랑은 폭력 없이 생각할 수 없다는 당신 말은 옳아요. 당신이 힘을 포기하는 건 나의 에로틱한 삶에서 자격을 상실하는 거니까요. 당신이 내 인생에서 유일한 욕구가 되길 바라진 않아요. 다만 체위를 바꾸어도 도발하지 않는 나의 문장들이 꿈틀꿈틀 살아나길 욕망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슬퍼말아요. 쿤테라 씨! 당신이 더는 내 영감을 흥분시키지 못하는 날이 올지라도 나는 당신의 자세를 기억할 거예요. 우리의 에로틱한 우정을 추억할 거예요. 당신이 그랬잖아요. 모럴은 쾌락 뒤에 풀어놓은 개떼 같아서 왕왕 거리며 일생을 쫓아온다고요. 그럴 때마다 나는 도망쳤어요. 배신의 짜릿함을 꿈꾸며 도망치고 또 도망쳤어요. 지키려고, 상처 입지 않으려고, 먼저 버리고 도망쳤어요. 비겁하게. 아무리, 아무리 도망쳐도 늘 제자리인 그곳에서 참을 수 없는 이 실존의 가벼움으로 나는 여전히 당신 무게를 감당하는 중입니다. 갈증이 해소되지 않은 그 아뜩한 무게를…. 사랑하는 쿤테라 씨! 당신이라는 책을 읽는 동안 넘겨진 페이지들이 마치 손 안에서 소실되는 모래알 같아 움켜쥐고 또 움켜쥐었어요. 소중한 무엇이 자꾸 줄어드는 것 같은 안타까움에 책장을 넘길 수가 없어 다시 왔던 길을 되짚길 수도 없이 했어요. 그런 나에게 당신은 내 뒤통수를 툭툭 건드리며 “뭐 그리 심각할 건 없어!” 하고 스쳐 지나곤 했지만 마치 심장을 관통당한 것 같은 나의 낭패감과 좌절을 당신이 알기나 했을까요? 어떻게 해야 당신처럼, 아니 당신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이글이글 타오른 질투심을 알아차리기나 했을까요?
당신이 나를 흔든 건 그뿐만이 아니었죠. 살다 보면 가끔 삶 속으로 떠내려 온 바구니에 담긴 아기를 받아 안게 되는 일이 있지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온 마음이 그쪽으로, 그쪽으로만 흘러가고 있을 때의 느낌 같은 거요. 사람들은 그걸 운명이라고 하지요. 당신이 내게 그랬습니다. 순간의 몸짓도 눈빛도 놓치지 않고 싶어 점자를 읽듯 더듬어 읽은 나의 독서는 매 순간 당신한테 흔들리고 꺼둘렸어요. 통증이 와야 비로소 제 몸의 존재를 알아채듯 아프게 흔들리며 비로소 나는 깨달았어요. 영원하지 않은 것의 축복, 유한의 삶, 그 존재의 가벼움이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말이지요. 삶이 영원하다면 그건 형벌이겠지요. 영원히 돌덩이를 산으로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이요.
존경하는 쿤테라 씨! 여전히 나는 당신의 찬란한 언어를 질투하지만 우리는 분명 시절 인연은 아닌 듯합니다. 만날 땐 태풍 같았지만 평균치를 놓고 보니 당신은 나를 조금 흔들어 주었군요. 딱 내가 좋아할 만큼. 가끔 혼자 있고 싶게 하고, 밑바닥을 들여다보게 하고, 젖게 하고, 무엇보다 감당할 수 있게 해요.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모럴과 굴레의 무게에서도 자유롭게 해요. 당신을 만난 힘이에요.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해요. 그래서 당신을 두 번째쯤 순위에 둘까 해요. 당신의 하중을 견디며 바닥에 가까울수록 삶에 대한 본능이 더 생생하게 깨어날 수 있도록이요. 없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둘까 합니다. 결핍의 언어들은 내 가슴과 거래가 성사되는 그때 어떤 이름을 단 존재가 되어주겠지요. 인생은 매일매일 낯설고, 그래서 참 설렙니다. ------------------------- *쿤테라 : 밀란 쿤테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