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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l May 25. 2024

아기의 편지

To.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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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참으로 낯선 이름이지만 내 마음에 위로되는 이름이네요. 나는 엄마를 기억하지 못해요.

어쩌면 기억이라는 그 말도 사치가 될 거예요. 내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엄마라는 이름을 참 좋아해요.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냥 푸근해지니까요.

엄마는 내 얼굴 기억하시나요? 나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그만 바구니를 내 집으로 삼아야 했죠.

내가 바구니 집과 함께 놓아졌던 그곳이 어디였는지 나는 기억할 수가 없어요.

엄마에게 버림받고 버둥거렸던 그곳이 어디였을까요?

엄마는 기억하시나요? 그곳이 어딘지를. 

나는 왜 엄마, 아빠와 떨어져야 했나요? 엄마에게 어떤 사정이 있어 나는 엄마를 기억 못 하게 되었나요?


##

엄마좋았어요. 그다지 나에게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엄마라는 그 사실만으로도.

내가 울 때면 적당한 짜증과 함께이긴 했지만,

배가 고파서 우는지, 기저귀가 젖어서 그러는지 챙겨주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나를 데리고 마트에 가는 길에 동네 사람들이 '아이 예쁘라!'라고 말하면

'그렇죠! 어디서 이렇게 이뿐 공주가 나에게 왔는지...호호호!'

엄마는 과하다 싶게 나를 칭찬하고 엄마 스스로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나는 그렇게 한걸음씩 한걸음씩 엄마의 딸이 되어갔어요.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죠. 엄마와 나는 같이 숨을 쉰 적이 없다는 것을요.

엄마한테는 아기주머니가 없어서 내가 들어서 있을 곳이 없었다는 것을요.


엄마 아빠가 싸웠어요.

자고 있는데 시끄러워서 일어나 보니 엄마 아빠 방이 어질러져 있고 엄마 아빠는 서로의 말만 하느라

내가 문을 열은 것도 모르는 듯했어요. 나는 실눈만큼의 틈을 주고 문을 닫았어요.

가끔씩 이렇게 싸우는 것을 보긴 했으나 오늘이 최고인 듯했어요. 아빠는 씩씩거리고 엄마는 울고 불고.

그 일이 있은 후 한참의 날짜들이 지나서

나는 바퀴 있는 커다란 가방과 함께 키가 큰 건물 입구에 서게 되었어요.

엄마가 거기서 조금만 기다리면 이모가 나올 거라고 하며

그 이모와 당분간 함께 있으면 엄마가 데리려 오겠다고 말하고는 갔어요. 그 말을 믿었어요.

그리고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엄마를 기다렸어요.

엄마 차가 서있던 보육원 마당을 매일 쳐다보았지만 몇번이나 계절이 바뀌었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았어요.


###

엄마는 모르실 테죠. 내가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나는 몸만 자랐지 마음은 아직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바구니 속 아기예요.

지금도 여전히 꿈속에서는 얼굴 없는 엄마를 찾아 헤매다 공중에 팔을 허우적거리며 아침을 맞아요.

보육원을 다녀간 어떤 여자분들이 그런 말을 했어요.

나의 사정을 아는지 어쩐지 나를 보고 자기들끼리 혀를 차며

'쯧쯧! 지 엄마도 버린 애를 누가 제대로 키워 주겠네!'라며 안쓰러워하는 눈빛과 함께

비수 같은 말을 뱉어놓고 갔어요.

엄마가 더 보고 싶더라구요. 얼굴도 그려지지 않는데. 그냥 막연한 엄마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바구니를 두고 갈 때의 사정은 어떠했으며 지금은 어떠한가요?

내 생각은 하고 있으신가요? 나를 이 땅에 뿌려둔 씨앗이라는 것을 기억이라도 하나요?

아님 아예 기억 속에도 없는 내가 되어버린 건가요?

엄.마!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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