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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위탁과 뇌의 침묵

생성 AI 시대, 인간은 무엇을 잃고 있는가

by AI러 이채문

1. 도구의 유용함과 정신의 이완 —
인공지능이 만든 편리함의 역설


기술은 인간의 노동을 덜기 위해 발명된다. 그러나 노동이 곧 사고라면, 사고의 위탁은 곧 존재의 위임이 된다. MIT 연구진이 최근 발표한 연구는 이러한 철학적 물음을 실증적 실험을 통해 제기하고 있다. 생성형 AI, 특히 챗GPT와 같은 대형언어모델(LLM)의 사용이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인지 구조 자체를 ‘수동화’시킬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에세이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AI를 사용한 그룹과 사용하지 않은 그룹으로 나뉘어 실험되었다. 뇌파 측정 장치를 착용한 상태로 진행된 이 실험은 인간의 두뇌가 사고하는 방식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공하였다. 그 결과는 명확했다. 챗GPT를 활용한 그룹은 에세이를 반복할수록 뇌의 활동성이 감소했으며, 복사-붙여넣기 방식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 사용의 편의성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그 편의성이 사고의 전위(轉位)를 초래한다는 경고이다. 즉, AI는 인간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보조자가 아니라, 사고 자체를 수행하는 대체자가 되어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2. 뇌의 연결성과 주체성의 해체 —
사고의 집단화인가, 개인성의 붕괴인가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뇌 부위 간 연결성 지표인 dDTF(dynamic Directed Transfer Function) 수치가 AI 사용 그룹에서 55%까지 낮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 수치는 뇌가 서로 다른 기능을 조율하며 유기적으로 사고를 수행하는 정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낮다는 것은 곧 두뇌 내 협업이 약화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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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집중력과 관련된 전두엽 중심 세타파 활동 역시 AI 사용자 그룹에서 현저히 낮게 측정되었으며, 이는 인간이 ‘지속적인 집중을 필요로 하지 않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처럼 뇌의 협응과 집중이 약화된다는 것은, 인간이 단지 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를 포기하는 상태’로 진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이 실험은 단순한 인지 테스트가 아니라, ‘심리적 소유의식’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챗GPT 사용자들은 자신이 작성한 에세이에 대해 ‘내 것이 아니다’라고 느꼈으며, 이는 기억력과 인용 정확도에서도 부정적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사고의 소유권이 사라지고, 기억의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사고의 주체란 무엇인가? 인간이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AI가 사고한 결과를 받아들일 뿐이라면, 그 결과물은 과연 ‘나의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사고의 과정을 공유하지 않는 결과는, 더 이상 인식의 일부가 될 수 없다.




3. 인지 부채 시대의 인간 조건 —
보조와 의존의 경계에서


MIT 연구진은 이를 ‘인지적 부채(Cognitive Debt)’라는 용어로 정리하였다. 부채란 나중에 갚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뜻이며, 이는 단순한 인지력 저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인식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여기서 AI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면서, 그 사고의 결과조차도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이 현상은 단순히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사고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자체가 ‘불필요한 활동’으로 인식되는 문명적 퇴보를 암시한다.


그러나 기술은 언제나 이중적이다. 연구진은 AI를 완전히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훈련이 선행된 이후’에 AI를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즉, 인간은 먼저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받아야 하며, 그 이후에야 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손으로 계산기를 쓰기 전, 구구단을 외워야 한다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사고는 도약을 위해 체화된 반복을 필요로 하며, 기술은 그 체화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의미 있는 보조가 될 수 있다.

결국, 챗GPT는 인간의 사고를 돕는 도구인가, 대체하는 존재인가? 우리는 지금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생각하는 것은 시간 낭비인가, 존재의 본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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