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무드 Apr 28. 2024

비문증과 섬광증 진단을 받았는데, 웃음이 나네요.

너 참 잘살고 싶구나. 그래 잘 살아보세.


육아를 하다 보니 내면아이도 키우고 있더라.


5살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수백 수천 가지의 방법을 알려주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엔 아이 입에 들어가는 모유와 이유식에 전념하기 바빴고, 두 돌이 되기 전엔 아장아장 걷는 아이가 넘어질까 따라다니는 일에 전념했다. 아이가 세돌이 될 때즈음엔 생활습관들을 알려주기에 바빴고, 아이가 네 살, 다섯 살이 되어가는 시기엔 아이에게 사랑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내 아이에게 하는 모든 말과 사랑은 나의 내면아이에게도 적용되는 말일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잠들기 전엔 사랑한다 말해주기. 오늘도 사랑했고, 너라서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면 아이는 다시 내게 묻는다. '엄마는 왜 날 사랑해?' 하면 나는 ‘그냥 이유 없이 너라서 사랑하지.'라고 말해준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5살의 내가 부모님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든든한 지원군 - 가족


아이와 미용실에 갔다. 막내처럼 보이는 디자이너 한 분이 아이에게 얘기한다.


"ㅇㅇ야~ ㅇㅇ는 엄마아빠 사랑을
엄청 많이 받았나 봐~
눈에서 사랑이 뚝뚝 떨어지네~
너 너무 예쁘다~"


기분이 좋았다. 우리 아이가 남들 눈엔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처럼 보이는구나. 그 말을 들은 나는 내 마음 저 어딘가에 따뜻한 온기가 퍼졌다. 치유였다. 서른 중반의 나이가 돼서야 나의 내면아이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던 순간이었다.


옆지기와 매일 밤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무얼 했는지 일상부터 내가 느꼈던 마음들을 나누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화목하고 안정된 울타리에서 자란 그는 이 시간을 빌어 내게 열성적인 특별과외를 시작한다. 예를 들면 사람을 대하는 방법 같은 것들. 결핍으로 생긴 부재들을 채워준다.)


하루는 옆지기가 그랬다. '당신은 어릴 적에 배워야 하는 것들을 건너뛰고 지나간 것들이 있는 것 같아. 그런 것들이 쌓여서 사랑을 주는 법도 알고 받는 법도 알고 친구를 사귀는 법도 알고 그러거든, 그리고 가족이 줄 수 있는 사람관계의 방법도 잘 몰랐던 것 같아. 당신이 살아온 길이 상처 나는 가시밭길 골목길이었다면, 이제는 좀 더 넓은 길로 가도 돼. 당신이랑 10년 사귀면서 얘는 왜 그럴까 의문이었는데 이제야 나도 요즘 그걸 느껴. 그래서 그 방법들을 차근차근 알려줄게.' 참 잘 자랐고, 참 고마운 사람이다. 부정하고 살기 바빴던 나는 이 말을 들으니 편안해지고 안정을 찾는다. 든든한 지원군 두 명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든든한 지원군 - 타인


글로성장연구소 최리나작가님과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주희 님 글을 보면 외면하지 못하겠어요. 다 비워내고 쏟아내고 글을 쓰세요. 누군가 보는 게 신경 쓰이거든 워드에 적어도 되고, 공개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이대로만 쓰세요. 쓰고 펑펑 울어도 좋아요.'


누군가한테 이렇게 위로와 응원을 받는 일이 또 한 번 나를 일어서게 만들었다. 내 삶을 불특정다수에게 던져두고는 ‘나 어떻게 해야 해요. 나 어떻게 살아가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며 살았기에. 동정 어린 눈빛들은 나를 갈기갈기 찢기 바빴지만 마음을 고쳐먹으니, 나를 생각해 주는 이들이 많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있다. 살아남으려고 애쓴 게 아니라 잘 살고 싶었던 것이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은 미워한 게 아니라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표현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망망대해에 하염없이 나를 떠내려가게 방치했다. 이전 글에서 계속 언급했듯 본인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글로 적자. 거칠어도 좋다. 무엇이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부터 슬프고 속상하게 하는 모든 걸 글로 꺼내어 읽어보자.


1년의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하게 쓰진 못했지만 300개 가까이 쓴 글들은 정말 나를 치유했다. 생각의 꼬꼬무에 빠지지 않고 나를 잡아먹게 두지 않았다. 챌린지 주제에 쫓겨 엉망진창인 글도 있었고, 남 욕하기 바빴던 감정일기도 있었다. 글은 그 글이 어떻든 나를 성장시킨다. 그게 글이 가진 힘이다.


글로 일어선 나의 성장리스트에는 참 많은 것들이 있다. 잘 살고 싶어진 점. 깊게 생각하고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점.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 이런 긍정의 리스트들이 쌓였다.


감정에 치우쳐 비가 오면 젖으랴, 바람 불면 찢어지랴 노심초사하고 살던 습자지 같은 인생이었다면, 지금은 양면 색종이 같은 삶을 보내고 있다. 상황마다 융통성 있게 알맞은 색종이를 꺼내어 들 줄도 알고, 또 다른 상황에선 다른 색상으로 뒤집을 줄도 안다. 젖고 찢어지고 구겨지면 어때 다시 꺼내서 살면 되지 하는 유연함도 생긴듯하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 흘려보내면 되고 이해하지 못할 땐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혜안도 생겨나고 있다.






이쯤에서 투머치토크를 하나 하자면, 디자이너로 일한 지 14년 차에 나에게 얼마 전 질병의 신호 하나가 찾아왔다. 그의 이름 '비문증'과 '섬광증' 안과질환 증상 중 흔하게 나타나는 것들이지만 심각하면 실명이 될 수 있다는 네이버의 사전 내용을 읽고 안과를 찾았다.


노화가 진행될 나이이긴 하나 관리를 잘해주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걱정은 한시름 놓았지만 손가락과 눈은 눈에 좋은 영양제와 음식, 관리법 등 정보를 찾기 바쁜 나였다. 비문증에 좋다는 파인애플을 사서 식초를 담갔다. 오메가 3가 많다는 생선들과 영양제를 찾는 나를 보고 웃음이 났다. 나는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이렇게까지 좋은 거 먹고 싶고 예방하고 싶고 건강하게 살고 싶구나 하고 말이다.


참 다행이다.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들여다보고 성찰할 줄 아는 나라서, 나 자신을 미워했고 인정하지 않고 허공에서 산 인생이라고 부정하듯 말하지만 누구보다 끈기 있게 쌓아온 커리어에, 외모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대지만 꾸밀 줄 아는 센스를 가져서. 나는 왜 이렇게 덩치가 크냐며 맞는 옷 없다고 불평불만 하지만 어떤 자리에 가든 지질한 모습으로 가진 않아서 참 다행이다. 이대로 한걸음 한걸음 행복한 일 만들어가면서 감사해하면서 살아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사과를 받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