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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가드너 Sep 05. 2024

정원의 한량들과 한량스럽게 보낸 하루

반려동물과 반려식물

                                                                                        


                                                                                                                                                                                                                                                                                                                                      


요가를 하고 아래층 내려가 블라인드를 걷기도 전에 작고의 소리가 난다.
'집사 뭐 해? 나 배고파 빨리 밥 주라고.'



작고에게 밥을  주고 정원을 바라보니 애정하는 참억새가 한량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바람에 따라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한량스럽게 운동을 한다. 바람이 세게 불면 진폭이 크게 약하게 불면 느리게 말이다. 그걸 바라보다 보니 내 맘도 느슨해진다.






부엌 싱크대에서 대각선 존이 우리 집 정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좋아하는 그라스 종류를 심고 사이사이 포인트를 주는 꽃을 심었다. 설거지를 싫어하는 내가 즐겁게 설거지를 있는 이유이다. 여러 종류의 사초를 사다 심었지만  남아서 자라는 참억새와 수크령이다. 








그라스들이 자라기 전인 봄에는  수국, 붓꽃, 금잔화가  빛을 발하다 애키네시아에게 자리를 내준다. 곧이어 쑥쑥 커버린 참억새와 수크령이 다른 꽃들을 대신한다. 작은 꽃들은 어디로 숨었을까?  금잔화가 사라지고 애키네시아가 참억새랑 수크령이랑 어울려 빛을 발한다. 시들어버린 애키네시아를 뒤로 하고 뒤이어 보라색의 버들마편초가 '나 여기 있어' 하고 억새와 수크령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사초들은 누구랑도 잘 어울려 편안함을 준다.


오늘따라 팜파스가 한량스럽게 보인다. 데크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동영상을 찍어 가족톡방에 남긴다. 아무도 반응이 없다. 모두 바쁜데 나만 한량이구나. 나도 할 일이 많은데 그대들에게 여유를 주려고 하는데 몇 초의 찜도 안 낸다고.


작고는 내가 데크에 앉아 있는 게 좋은 지 내 사정권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살그머니 다가와 꼬리로 애정표현을 하고 있다. 오늘은 특별공연을 준비해 나를 웃게 만든다. 잔디밭에서 가만히 있다가 휘리릭 뭔가를 쫓아간다.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가 한참을 응시를 한다. 그러다 아저씨 다리를 하며 그루밍한다. 요즘은 작고가 정원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다. 샤냥엔 성공을 못한듯 하다.


한량의 주인공인 참억새와 그 뒤로 숨어버린 수크령과 정원 여기저기 보라색으로 멋지게 변신하고 있는 버들마편초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나비가 날아와 버들마편초로만 옮겨다닌다. 꿀이 많은가 보다.



며칠 전에 집에 친구 수민이가 왔다. 

'계단 올라오다 보니 작은 꽃들이 피어있던데 예쁘더라. 꽃이름이 뭐야?'


'버들마편초야. 내가 좋아하는 꽃이라 계단 중간에 있어도 안 뽑고 있어. 피해서 오느라 불편했지? 고양이도 피해서 다니더라. 밟고 다니면 내가 혼내줄 건데.'


'고양이들 똑똑해. 꽃 예뻐.'









버들마편초는 숙근버베나라고도 한다. 다 자라면 1M, 꽤 키가 크다. 사각기둥의 가는 줄기가 말채찍처럼 보였나? 마편초라고 부르는 이유가 줄기의 생김새에서 비롯되었다. 잎과 줄기는 거칠다. 꽃은 보라색으로 신안 퍼플섬의 주인공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혼자 일 때도 예쁘지만 같이 모여있을 때 훨씬 버들마편초의 매력이 커진다.






가을이 되면 갈대나 억새를 보러 가야 할 것 같다. 겨울날의 갈대나 가을의 한라산 억새는 정말 멋지다. 자연스럽고 여유를 주는 움직임이 사초를 좋아하는 이유이겠지. 그들을 바라보는 나도 함께 여유를 누릴 수 있으니까. 


처음 정원에 뭔가 심으려고 할 때 어떤 종류를 심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될 때 우선 그라스존은 만들어야지 맘을 먹었다. 커다란 바위도 가져다 놓고 싶었지만 정원의 규모가 따라주지 않아 맘을 접었다.사초 종류도 워낙 많아서 남사에 있는 화원을 뒤지고 다녔다. 가고 가고 또 가서 마음에 드는 종들을 하나씩 하나씩 사 왔다. 가장 먼저 샀던 것은 털수염풀이다. 털수염뿔은 훨씬 넓은 땅에 심는 게 나을듯하다. 억새와 수크령에 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팜파스를 심고 싶지만 키가 3M까지도 자란다고 하니 우리 집 정원처럼 작은 곳엔 어울리지 않는다. 리틀팜파스는 1M까지 자란다고 해 바로 픽했다. 이 리틀팜파스가 우리 집 대표적인 한량이다. 번식도 잘된다. 수크령보다 키가 작다고 해 앞에 심었는데 역전이 돼 수크령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내년에 자리를 바꿔줘야 하나보다. 뒤쪽 산에 심어 멋진 억새동산으로 만들어볼까? 억새는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고 흘러내리는 토양도 잡아주고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고 하니 매력덩이다.











수크령은 강아지풀과로 많이 큰 강아지풀처럼 보인다. 내가 산 종은 모드우리로 꽃(열매) 부분이 붉어서 멋지다. 두 번째 한량이다. 다 자라면 키는 1.5~2M 정도이고 번식은 씨앗으로 뿌리로 가능하다. 꽃꽂이 재료로도 잘 사용한다. 







우리 집 한량 갑은 길냥이 작고이다. 식사 때가 되면 집안을 보며 앉아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데크에 널브러져 있다. 물론 길냥이라 마실을 다녀오기도 한다.



정원의 한량들을 보며 나도 한량스럽게 하루를 보냈다.  데크에 앉아 있다 풀이 보이면 가서 뽑고 온다. 앉아 있다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보이는 풀을 목표로 다가가 뽑아 버린다. 뿌리까지 뽑히면 좋아라 하는 아주 작지만 큰 만족을 느끼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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