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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닭비둘 Sep 19. 2023

아버지

토를 해야 할 것 같다. 가까운 벽을 찾았다. 적당히 수풀도 우거졌다. 손가락을 입에 갔다댔다. 후두둑 쏟아진다. 오징어, 곱창, 불어터진 라면가락. 전투의 흔적이다. 내가 만 소맥이 제일 맛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말아야만 했다. 네댓 번 정도 헛구역질을 하고 나자, 여자들이 흔들어대던 탬버린 소리가 귀에 일렁였다. 탬버린 소리 사이로, 그분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그 부서 희망퇴직인원 확정해서 올려.” 


고개를 들었다. 손을 올려 입에 남은 물기를 닦아냈다. 갈 곳을 잃은 길고양이 한 마리가 풀숲에서 우짖고 있었다.      


오줌이 마렵다. 바지를 내렸다. 구두 끝이 젖었다. 대충 풀밭에 신발을 비볐다. 불안도 함께 털어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몇 발자국 가지 않아 걱정이 앞섰다. 누구를 보내야 하나. 팀 실적 부진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위에선 회사가 어렵다고 했다. 


15년을 함께 해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나.. 아니 그것보다 누구한테 이야기해야하나. 휴대폰을 들었다. 카톡을 열었다. 김규웅 차장94, 박영훈 차장97, 이선호 대리04, 조영찬 대리05.


 김 차장은 작년에 아이를 대학에 보냈다. 지방에서 자취를 한다고 했다. 박차장은 장모가 암에 걸렸으며 이 대리는 실적이 좋다. 


조영찬 대리? 지지난 달에 우리 팀으로 이전해왔다. 해외근무를 오래해서 아직 한국식 영업에 익숙치않다. 나랑 고까울 일도 적겠지. 아직 젊은 나이니깐 재취업도 가능할 거야.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조대리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멍하니 봤다. 아들인가. 아내와 함께 돌 정도를 지난 꼬마를 안고 있었다.     


카카오택시 앱이.. 


안경을 이마 위로 올렸다. 언제부터인가 안경을 쓰고 스마트폰 액정 보는 게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위치를 찾아서 찍었다. 도착지점에 불광동 현대아파트 5동을 꾸역꾸역 적었다. 래미안이나 위브, 캐슬 따위의 휘황찬란한 이름은 아닐지언정 10년을 모아 얻어낸 집이다.


 아직 8천의 빚이 남아있다. 빚. 빚을 갚아야한다. 조대리를 잊고, 조대리의 가족을 잊고 택시에 올랐다. 한강철교다. 20년 내내 저 다리를 건너며 출퇴근했다. 게으름을 피워본 적도 지각을 한 적도 없었다.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그 보상으로, 나는 그저 누군가의 목을 잘라야 하는 괴물이 되어있었다.     


631208. 현관 비밀번호다. 불이 꺼져있다. 식탁 위에 놓인 노트북 모니터 불은 켜져 있다. 아들 녀석 거다. 이번엔 돼야 하는데. 불 켜진 노트북 옆에 한 뭉치의 종이가 놓여있다. 


[☐☐ 그룹 인재상]. 바지를 대충 의자에 걸쳐놓고 앉았다. 어딜 가나 비슷한 얘기다. 나도 인사팀을 해봤다. ‘창의적 문제해결’, ‘과감한 실행’, ‘상호성장 추구’, ‘최고의 전문성 추구.’ 이 네 가지가 Success Potential이란다. 

몇 개가 빠졌다. ‘까라면 깜’, ‘나가라면 나감.’ ‘자르라면 자름’.    

 

녀석의 자기소개서를 몰래 읽었다. 성장배경 및 지원동기다. 내 얘기가 나온다.


“저는 부유하진 않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지 마라.’ 이 한마디는 제 가슴 깊숙이 새겨있습니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근무할 때도 항상 타인과 협업하는 마음으로 임하겠습니다.” 


뒤에는 읽을 수 없었다. 읽고 싶지 않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들을 답답하게 여겨야 할까, 저항하지 못하는 나를 부끄러워해야 할까.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었다. 냉장고 옆 서랍장엔 아버지와 아들의 똑같은 대학 졸업장이 놓여있었다. 


‘임하겠습니다.' 옆에 놓인 커서가 내일을 모르는 서툰 창녀의 윙크처럼, 혹은 반란을 꿈꿨던 사형수의 눈꺼풀처럼 껌뻑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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