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딩하니 아프다.
나의 대학생 시절의 꿈은 유학이었다. 해외에 대한 막연한 로망. 내 속에 꿈틀거리는 그 로망을 나는 잠재울 수가 없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나는 친구들이 하나씩 유학의 길을 선택하고 미국으로 독일로 프랑스로 떠날 때마다 내 안에 커지는 부러움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가슴속에 꿈틀대는 꿈을 누르고 나도 모르게 흔들거리는 눈빛을 잡으며 친구들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집으로 돌아오면 이불속에서 한동안을 울곤 했었다.
공부를 하고 유학을 위해 입학시험을 보는 건 두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단 하나. 경제적인 부분을 지원해 줄 사람이 없는 나는 자신이 없었다.
부모님들이 돈이 많은 친구들은 당연한 듯 시험준비를 하고 어학원을 다니며 언어공부를 준비하러 갈 때 나는 피아노 레슨을 하러 가야 했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는 저렇게 든든한 부모님을 허락하지 않으신 걸까…라는 마음이 한편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학은 가라고 하시면서 등록금도 없는 우리 집 형편에 내가 그 비싼 음대를 합격했으니..
좋은 대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음대는 음대인걸..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지 않아서 대학교 2학년때부터 내 용돈이며 대학 학자금까지 다 벌어서 감당하면서 살았는데 유학을 가서 언어도 안 통할텐데 공부도 하면서 알바도 해야 하는 현실이 두려워서였을까? 나는 그때 결국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포기한 나의 꿈이 나의 욕망인 것이었을까? 아님 역마살이었을까? 항상 외국이라는 것은 나의 마음 한 구석을 계속 자극하였다.
그런 일상이 잊히고 결혼 후 안주할 무렵, 남편이 갑자기 일본 오키나와로 이주를 하자고 한다.
나는 1초도 생각 안 하고 ‘그래! 나에게도 해외에서 살 기회가 왔어.!’라고 생각하고 승낙을 했다.
남편은 내가 그동안 품어왔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걸까?
아무 생각 없이 전 재산이 들더라도 나는 가고 싶어. 가서 사기를 당해도 좋아! (당하지는 않겠지만) 가서 거지가 되어도 좋아! 아직 우린 젊으니까 뭐라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나 언어!
일본어! ”일본어 알아? “라고 물어보는 친구의 질문에…“아니,, 곤니찌와는 알지. 이제 공부하면 되겠지. 일본어는 금방 배운다고 하잖아.!” 그런 가벼운 대답 속에는 남편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남편은… 일본어의 일자도 모르는 사람이고 해외여행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일본 오키나와로 이주해 간다는 것인가?
남편은 오키나와에 있는 한국인을 우연히 알게 되고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고 싶다고 영어 할 수 있으니 영어로 일하면 된다고 오키나와를 가볍게 생각하고 이주해 왔다.
결정하고 이주해 오기까지 2달. 그 짧은 시간에 모든 사람은 너네 사기당하는 거 아니냐부터 해외 경험도 없고 일본어도 모르는데… 등등의 걱정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우리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나의 해외살이 로망이 갇혀있던 창살에서 빠져나오는 듯했다.
오키나와는 환상이다.
어딜 가도 햇빛과 맞닿아 반짝반짝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고, 다채로운 파란 바다 어딘가는 투명하다 못해 열대어들이 다 보이고. 이런 곳에서 지내는 것이 뭘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동양의 하와이라 불리는 이곳에 내가 있다니.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셔도 여긴 천국이야! 하며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그런데 역시나 감이 안 좋다. 나도 남편도 일본어를 몰라 항상 통역이 필요했고 게스트 하우스를 하려고 해도 어찌나 서류가 많이 필요한지.. 우리는 통역해 주는 한국인만 믿으며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정말 사기 치지 않기를 조마조마하는 마음이 매일 스멀스멀 올라오자만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우리가 일본어를 모르니까.
이주해 오면 필요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핸드폰도 있어야지, 차도 있어야지, 집도 있어야지, 집 안에 들여놓을 가구며 필요한 용품들을 다 사러 다니는데 어디에서 뭐를 살 수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 그런 우리에게 그 사람이 집도 마련해 주고 필요한 생활품도 전부 마련해 준 집에 딱 들어가 이제 게스트하우스만 잘 되면 되겠다 하며 마음을 내려놓을 때쯤…
이게 웬걸.. 우리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제 갓 한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을 일본의 어느 누가 믿어주고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는가? 더군다나 우린 말도 못 하는데….
모든 계약은 다 그 통역사의 이름으로 하게 됐고 그 사람은 우리에게 원래 필요했던 돈의 몇 배를 불려 우리에게 받아간 후 계약을 해서 진짜 계약서를 우리는 본 적이 없다. 그건 우리가 일본어를 모르니 당한 것이다. 그렇게 우린 우리의 전재산이 사기를 당하는 줄도 모른 채 오키나와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오키나와! 너무 예뻐서 반해버리는 오키나와에서
가슴 벅차도록 부푼 나의 인생이 와장창 무너지는 일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뻔한 일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이, 내게 생겼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해외 사기,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데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게 맨땅에 헤딩은 시작되었고 해외살이에 대한 로망만 가지고 무식해서 용감하게 이주해 온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리고 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우리의 오키나와 생활은 이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