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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ssam Jun 15. 2023

물속에 사는 것 같아요.

습도와의 전쟁


따뜻한 남쪽 나라. 일본 최남단에 있는 작은 섬 오키나와.

말만 들어도 너무 매력적인 곳이다.

나에게 있어 한국의 사계절은 적응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 중에 하나다.

당연히 한국 사람인데 30년을 넘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냈는데 30년이 넘어도 적응이 안 되는 건 내가

예민해서일까? 모든 사람이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춥고 다 똑같이 느끼는걸

변화가 싫어 나는 언제나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고 싶었다.  

일 년 내내 기후 변화가 별로 없는 곳. 그래서 한때 남아프라카공화국에 대해서 알아봤었다.  

여름 최고 기온은 28도 겨울 최저기온은 18도인 나라. 얼마나 기 좋을까? 얼마나 쾌적할까?


참 엉뚱하지? 생뚱맞게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니… 우리 부모님은 항상 나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기온의 변화는 나의 건강변화였었는데

아무도 모르는 나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20대 30대 시절.

여름이라 쓰러져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면서 ‘더워서 그런가 보다.‘ 겨울이면 근육들이 굳어버려 ‘추워서 그런가 보다.’ 그러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다들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건강 체질처럼 보이지만 나는 사실 그렇지 않았다.

자금 생각하니 운동부족이었나? 싶지만 체력이 원래 약해서 날씨의 변화조차 몸이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응급실에 가는 횟수가 늘어갔다.

오키나와에 오기 전 1년 반 정도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던 나.

기후 변화가 적은 지역에 살고 싶은 마음은 무의식적으로 나를 지키고 싶어서 나온 것 같다.




그러던 나에게 오키나와는 따뜻한 남쪽 나라. 딱 맞는 환상의 섬이 아닌가?

최저 기온이 10도 정도, 최고 기온은 35도 정도인데 여름은 집 안이서 에어컨 틀고 지내면 되니 뭐 그 정도야.. 잘 지낼 수 있어!라고

그런데 너무 기대했었나 보다. 바닷가의 날씨는 정말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날씨이다.  특히 겨울은 더 그랬다.


여기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느껴진다. 물론 겨울에는 눈도 안 오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첫해 겨울에 느꼈던 습도는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쇼크였다.

난방이 전혀 안 되는 일본식 집에서 온도는 10도 정도이지만 습도가 90프로 이상이 되는 날이 많았다.

이불은 축축하고 빨래는 안 마르고 찝찝한 기분이 나를 쥐어짜는 것 같았다.

또 바닷바람은 얼마나 세고 추운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날씨이다.

그리고 내가 춥다고 하는 것이 한국에 있는 사람이 보면 너무 웃길만한 상황이다.

부모님과 전화통화를 하면

“기온이 10도인데 뭐가 추워~~~.”

 ”한국에 와 봐라. 칼바람 불어서 나가지도 못하겠다. “라고 하시면서도 내 건강을 걱정하신다.






집안 곳곳에 깜짝 놀랄만한 친구들이 찾아오는 시기가 있다.

잘 사용 안 하던 가죽가방, 신발장에 넣어놓고 자주 안 신던 신발, 주물 냄비, 심지어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연필 색연필…등등

온갖 곳에 반갑지 않은 곰팡이가 찾아와 깜짝 놀라게 한다.

집집마다 다르지만 심지어는 천장 구석에도 생긴다. 환기는 필수이지만 환기를 시킬 수 없을 때가 있다.

태풍이 오거나 비가 며칠 연속으로 올 때. 최소 3일만 연속으로 비가 와도 집 안과 차 안에 곰팡이는 감당이 안된다.

아령에도 곰팡이가 생겼다.

그렇다고 24시간 제습기를 돌리고 에어컨을 켜 놔도 감당이 안 될 때가 있다.

전기세도 감당이 안 될뿐더러 그 제습기 돌아가는 소리에 예민해지고 에어컨을 돌리며 히타를 틀어야 하는 이 상황은 나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심지어는 태풍이 4일 동안 오키나와에 머물러 4일 동안 집에서 못 나간 적이 있다. 그때는 전기도 끊기고 가스도 안 나오고 물도 안 나왔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차 시트며 천장이며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서 내부 클리닝으로도 해결이 안 돼서 결국 폐차를 선택한 적이 있다.


작년은 정말 잊지 못할 동남아우기 같은 시즌이 있었다. 4월 초부터 정확히 6월 20일까지 비가 왔다. (오키나와에는 우기는 없다. 장마가 있을 뿐)

노아의 방주가 필요해~! 를 외치고 싶었던 시간들.

지금은 그때 그랬지!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렇게 비 오는 시간이 얼마나 괴로운지.


그런데 내가 그 습도에 적응을 했다.

이제는 90도의 습도에도 짜증이 나지 않고 심지어 100도가 넘어 습도계로 측정이 안 되는 날에도 아무렇지도 않다.

또 하나 감사한 것은 오키나와에 온 후로 응급실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물론 응급실에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올 해는 안 가고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지만

한국에 있을 때보다 횟수가 훨씬 줄어서 많이 건강진 느낌이다.

어느 누구보다 건강에 대해 민감한 나인데 이렇게 따뜻한 오키나와에 있는 게 행운 같다.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물어봤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는 대답한다.

 “한국의 겨울이 너무 추워서 못 가겠어.”

그럼 사람들은 한국 사람인데 한국의 겨울이 춥다고 못 간다고 하니 나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날씨가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내 삶을 돌아보며

오늘도 내가 오키나와에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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