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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a May 06. 2023

[엄마, 안녕] 6. 엄마의 레시피

들들 볶다가 팔팔 끓여서.

예감이었을까, 바람이었을까.


작년 봄, 난 엄마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엄마'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밥, 그리고 음식이었다. 엄마는 늘 자식들이 밥은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걱정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음식을 해주시려고 했었다. 곰탕을 끓여주기도 하고 시래기, 아욱, 콩나물 등의 재료를 넣은 된장국을 끓이고 미역국도 끓여주셨었다. 그리고 김치나 나물, 제육볶음, 고등어조림 등등의 수많은 반찬을 만들어서 오빠나 언니한테 나눠주고, 엄마랑 나도 먹었었다. 그래서 엄마는 늘 아주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야 했었다. 그런 엄마와 엄마의 음식에 관한 얘기를 써도 좋을 거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엄마가 음식 하는 모습을 많이 봤지만, 정확하게 그것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의 레시피를 정리해 놔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생각에는 나중에 엄마가 요리를 못하게 될 때, 엄마 입맛에 최대한 맞춰 음식을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없이 나 혼자 남게 되는 상황을 설정하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글을 쓰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김치 담그는 에피소드를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더 상상을 해보려고 했지만, 막상 엄마 없이 나 혼자 있는 상황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일들이 몰려들어 엄마에 대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마음 한 구석에 고이 접어 뒀었다.

레시피도 물론 적지 못했었다.


그런데, 진짜로 엄마가 돌아가셨고 난 혼자 남게 되었다.

엄마의 부재를 상상했다는 것을 언니나 오빠한테 감히 말하지 못했고,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내가 엄마를 돌본다고 생각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다가도 엄마가 혼자 있는 것을 걱정해서 집으로 빨리 가야 했고,  어떤 후배는 나를 다른 사람한테 소개할 때 '엄마와 결혼하신 분'이라고 했었다.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은 내가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을 알았기에 웃음으로 넘겼지만, 간혹 그런 나의  상황이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또, 이렇게 계속 엄마와 함께 늙어가다 보면, 나중에는 노인이 노인을 모시고 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런 부담과 불안이 엄마의 부재를 상상하게 했을까? 난 엄마의 부재를 원했던 걸까? 할 수 있다면 작년으로 돌아가서 그 생각을 지우고 싶었다. 꿈에도 바란 적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돌아가신 후에야, 내가 엄마를 돌본 것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엄마 품속에서 독립하지 못한 것이었음을 처절하게 알아가는 중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집안의 모든 물건이 버거웠었다. 오빠나 언니한테 음식 나눠 주려고 산 김치통들이 베란다에 한가득 있었고, 김치냉장고를 포함해 냉장고가 3대가 되는 것도 부담이었고, 냉장고 안에 든 동치미와 배추김치, 각종 장아찌와 된장, 고추장 등의 내용물도, 쌀이 40kg이나 있는 것도, 소금이 20kg 있는 것도, 작년에 김장을 하려고 사 둔 고춧가루와 엄마가 담근 새우젓도 부담이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나 혼자 남게 되자, 엄마가 관리하던 것들을 나 혼자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날 짓눌렀고, 엄마의 공간에 나 혼자 남겨진 거 같아서, 나도 살던 집이 갑자기 낯설어지고 버거웠었다.


그렇게 버겁던 것들 중에 김치는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밥을 챙기는 일은 어려웠었다. 우선 혼자 먹겠다고 음식을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김치찌개는 내가 만만하게 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엄마랑 먹을 때처럼 목살이나 등뼈를 넣는 것이 아니라 햄을 넣어서 했지만, 엄마의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는 맛있었다. 내가 김치찌개를 해서 먹고, 오빠와 언니가 조금씩 가져가고, 그렇게 엄마의 김치는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 없어지겠지. 그런데 또 그 순간을 맞고 싶지는 않다.


냉동실에는 잔멸치와 국물멸치, 진미채가 있었는데, 잔멸치와 진미채도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잔멸치 볶음과 진미채 볶음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엄마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진미채는 빨간 양념을 해서 프라이팬에 볶았던 기억이 전부였고, 잔멸치는 프라이팬에 잔멸치만 먼저 볶았던 것과 나중에 꿀을 넣었던 것만 기억이 났다. 하는 수 없이 인터넷을 검색했다. 아주 많은 고마운 분들이 레시피를 올려주셔서 그중 가장 간단하게 보이는 것으로 잔멸치와 진미채를 볶았다. 하지만, 아무리 간단해도 해보지 않던 것들이라 간장 꺼내고 레시피를 보고, 물엿 꺼내고 다시 레시피 보는 식으로 했더니, 나중에는 너무 어지러웠다. 엄마는 이런 거 안 보고도 척척 했었는데.


언니가 진미채를 좋아했었다. 엄마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도, 언니가 집에 오던 날 언니를 위해 진미채를 볶았었다. 내가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엄마를 막을 수 없었고, 다만 엄마를 위해 환풍기를 틀어줬을 뿐이었다. 엄마는 진미채를 볶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웠었다. 잠시 서 있는 것도 너무 힘겨울 때였었다.


어지럽게 요리를 하기는 했지만, 레시피대로 하니 진미채와 잔멸치 볶음이 먹을 만했다. 그게 용기가 됐을까? 이번에는 엄마가 하던 동치미채 무침을 해보고 싶었다. 이건 엄마가 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했다.

김치 냉장고에서 동치미 무를 꺼내서 채를 썰었다. 굵기가 제각각이었다. 그것을 물에 담갔다. 파를 썰고, 마늘을 다졌다. 물에 담갔던 동치미 무를 꺼내 물기를 빼고 볼에 담았다. 파와 마늘을 넣고, 엄마가 용문까지 가서 짜온 들기름을 넣고 고춧가루와 매실액과 깨소금도 넣었다. 조물조물 무쳐서 맛을 봤다. 뭔가 애매했다. 엄마가 해줄 때는 새콤하고 들기름이나 참기름 때문에 고소하기도 했는데, 뭔가 쓰고 알 수 없는 부족함이 느껴졌다. 소금을 조금 더 넣었다. 그래도 맛은 비슷했다.

아, 망했다. 설탕을 조금 넣었더니 조금 먹을 만 해졌다. 여전히 엄마의 맛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나 혼자 먹을 거라서 포기하고 그릇에 담았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끓인 콩나물 국도 그랬다. 엄마가 하던 대로 솥에 콩나물과 물을 담고 소금을 넣고 팔팔 끓인 후, 콩나물을 건져내서 고춧가루, 파, 마늘, 소금, 설탕, 깨소금을 넣고 조물 조물 하다가 반은 콩나물 무침으로 먹고 반은 다시 국에 넣어 콩나물 국을 끓였었다. 무침까지는 먹을만했는데, 국이 늘 망했다. 뭔가 조금 아쉬웠다. 생강도 넣어봤지만, 그래도 아쉬웠었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내린 결론은 엄마는 '고향의 맛'을 넣나 보다.'였다. 다시다나 미원 같은.


엄마의 레시피가 하나 남은 게 있다.

작년 엄마가 항암주사를 맞고 한방병원으로 전원(의료적 관리가 필요해서 집으로 보내지 않고 종합병원에서 요양병원 등의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것)을 했을 때, 엄마가 알려주는 것을 녹음한 것이었다. 그때도 이미 먹는 것마다 토를 하고 있었지만, 따뜻한 미역국은 먹을 수 있을 거 같다면서 집에 다니러 가는 나한테 끓여 오라고 했었다.


미역을 미지근한 물에 불려서 줄기를 떼 내고 부드러운 부분만 남겨서 칼로 적당하게 썰어 먹기 좋게 한 후, 멸치액젓과 들기름을 넣고 달달 볶은 다음에 물 넣고 팔팔 끓이고, 나중에 다시다 조금 넣으라고 했다. 내가 파나 마늘은 안 넣는지 묻자, 마늘은 말고 파를 넣으라고 했었다.


인터넷 레시피에는 파 대신 마늘을 넣으라고 했을 테지만, 난 엄마가 알려 준 방식으로 미역국을 끓여다 줬었다. 미역국을 끓이는 중에 얼마나 팔팔 끓여야 하는지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데, 엄마는

"니가 알지. 엄마가 어떻게 알아. 양 보고 대충 팔팔 끓여.'

라고 했었다. 엄마의 레시피에는 '1큰술'이나 '1작은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적당히'와 '조금', '팔팔', '대충' 그리고 '들들'이 있었다. 엄마는 대충 감으로 음식을 했는데, 그래도 엄마의 음식은 맛있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끓여간 미역국을 엄마는 한 입도 먹지 못했다. 미역국은 한방병원 냉장고에 있다가 버려졌다. 난 원래 미역국을 좋아했는데, 어쩐 일인지 이후로는 미역국을 먹지 않았다. 엄마 방식대로 끓일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인데 말이다.


얼마 전에는 된장찌개를 끓였다.

작년에 엄마가 이모 댁에 갔다가 얻어온 된장으로 끓인 것이었다. 된장찌개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된장찌개가 너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육수를 내고 된장을 물에 풀어 호박과 감자 양파 청양고추를 넣고 끓이다가 고춧가루도 넣고 끓이니 세상 맛있었다. 역시 된장이 맛있으니 맛있나 보다. 엄마한테 해줬으면 엄마가 이건 맛있게 먹었을 거 같았다. 엄마는 속이 니글거리면 개운하게 된장찌개를 먹고 싶어 하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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