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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a Aug 11. 2023

오늘

늘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종종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있던 일정도 취소하고 집에서 그냥,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보내려 했다.

그러나 내 안의 말들이 밖으로 나오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굳이 꺼내 보이지 않고 잘만 살아가는데, 나는 소소하고 작은 생각 하나 마음속에 담아두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표현력도 소박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끄적이고 마는 오늘이다.

어차피 늘 아웃사이더였으니까.   


       

좋은 핑계였었다.

나의 단짝 친구가 젊은 날에 사고로 죽은 이후, 그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희곡을 썼고, 친구를 기린다는 명목으로 공연을 올렸었다. 그러나 그것은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느낀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내 욕심에 지나지 않았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애써 외면했었다.

나의 재능이 뛰어나지 않음을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고, 나의 대인관계가 한없이 협소해서, 또 굽히지 못하는 나의 성격 탓에 더 이상의 활로를 찾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부여잡고 있었다. 다른 일을 꿈꿔본 적이 없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집안이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고, 그것은 부여잡고 있던 일을 그만두게 하는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었다. 집안 문제로 어쩔 수 없이 꿈을 포기했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열심히 일을 했었다.

꿈을 포기하고 나서 엄마와 단 둘이 남게 되었을 때도, 엄마는 나에게 ‘엄마를 위해 산다.’는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었다.      



핑계를 대며 살아왔는데, 이제와 보니 나에게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꿈도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해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를 잃은 상실의 고통 외에도 의미를 찾을 수 없고, 목표도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에 더 허둥거렸는지도 모른다.


모든 핑곗거리가 사라졌다.


다른 이유 없이, 다른 핑계 없이 내 남은 생을 위해 홀로 서야 하는 시간이 왔다.

고등학교 시절 10대의 치기 어린 감성으로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를 즐겨 읽었다.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 다시 쓰러져 있었다.     


----- 서정윤 [홀로서기] 중 일부 발췌.  


        

너무 좋다며 가슴 시리게 읽었던 시들이 이제는 처절하고 고독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막상 나에게 닥친 홀로서기는 너무 막막하고 알 수 없는 불안으로 다가온다.

늘 찾아오는 '오늘'이 너무 힘들었다.

상실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막연하고 불안한 오늘이라는 시간 자체가 힘들었다. 제의가 오는 모든 일을 하며 몸을 혹사해서 시간이 잊히기를 바랐다.  

    

그러다 며칠 전, 벌레와의 전쟁을 벌였다. 벌레를 쫓아다니면 죽이는 나의 모습을 보고,

‘내 삶의 의미는 벌레를 죽이는 것인가?’

하다가,

‘나 살겠다고, 살려는 벌레를 죽이고 있구나.‘

생각했다.  


   

몇 해 전 공연한 양귀자 소설의

‘한 마리의 나그네 쥐’

가 생각났다.

마을 사람들이 저녁에 술 한 잔 하면서 사라져 버린 사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었다.

그 사내는 열심히 회사를 다녔었다. 그러다가 지하철에서 공황장애 같은 증상을 겪었다. 그는 이전에 우연히  5.18 현장에 있었고, 집단 속의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이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힘들어하다가, 어느 날 집 앞의 산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사내는 산에서, 자신처럼 해가 지고도 산을 내려가지 못하고 산속을 헤매는 쥐를 마주하게 된다.

사내의 이야기를 마친 마을 사람 중 하나가 술자리를 파하면서 모기를 한 마리 죽이며 모기와 모기가 생기게 된 강노인의 밭을 탓하게 된다.

그때 마을 사람 중 다른 하나가 얘기한다.


‘모기도 다 살자고 하는 짓이라요. 살라고 애쓰는 놈은 좌우당간 살려야 하는 기라요.’


이 말의 가치판단은 각자 다르겠지만, 이 말이 유독 여운이 남는 것은 아직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알 수 없으나, 나도 살고 싶고, 살고자 애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거다.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어서, 해야 할 것이 없어서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내 삶이지만,

막연하고 불안하기만 한 오늘이지만.

핑곗거리 없이 오롯이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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