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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a Apr 30. 2023

[엄마, 안녕] 4. 편백나무침대가 딱딱했다.

이제 5월이 코 앞인데도, 밤에는 여전히 추워서 보일러를 돌려야 다. 비가 오면  추워져서 발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지난밤도 비가 내려 너무 추웠다. 보일러를 틀기는 했으나, 온도가 낮아서 방은 냉기로 가득했고, 다시 발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보일러의 온도를 높일까 몇 시간을 고민하다가 고민만 하고 말았다. 엄마가 있었으면 바로 보일러의 온도를 올렸을 테지만 혼자 있으니 보일러 온도 1°C 올리는 것도 고민이 되다.

가스 요금이 너무 비싸기도 하니까.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편백나무 침대에 누웠다. 따뜻했다. 그리고 딱딱했다. 여전히.


엄마는 더위를 많이 탔었다. 여름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흘렀고, 특히 여름에 음식 할 때는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땀이 흐르고, 속이  화기로 가득한 듯 더운 숨을 크게  내뱉으셨었다. 견디다 견디다 에어컨의 리모컨을 손에 들며,

"조금만 틀자."

엄마가 에어컨 튼다고 뭐라 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그렇게 허락을 구하듯 말하고 에어컨을 틀었었다. 그건 아마도 상대적으로 땀을 덜 흘리는 내가 신경 쓰이고, 더 크게는 전기세 걱정이었을 것이다.

"엄마 혼자 있으면  안 틀어. 틀어도 잠깐 켜서 온도 낮추고 바로 끄지."

엄마는 에어컨을 틀 때마다 변명하듯 말했었다.

"괜찮아, 그냥 틀어. 엄마 아프면 병원비 더 들어가니 그냥 시원하게 있어."

아프라고 한 말이 아니라 마음 편하게 에어컨 틀라고 한 말이었다. 엄마도 내 뜻을 이해했지만 엄마 혼자 있을 때 에어컨을 트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인 듯했다. 그래서 엄마는 친구분들과 대형 쇼핑몰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하셨었다.

"너무 시원해. 우리 같은 노인들이 아주 많아. 조금만 늦게 가면 앉을자리가 없다니까."

만족감과 함께 혼자만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 거 같은 안도감이었던 것 같다. 쇼핑몰에 가서 물건도 사지 않고 비치된 의자에 앉아만 있다가 오는 것이니 눈치가 보였을 것이었다.

전기세가 무서운 엄마는 에어컨을 늘 참고 참다가 틀었었다. 그러다 가끔 내가 먼저 에어컨을 틀자고 하면

"너도 더워?"

엄마는 반기며 말했고, 난 견딜만했지만,

"엄마는 안 더워?"

라고 하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엄마 손 닿는 곳에 있던 리모컨을 단번에 잡아 에어컨을 틀었었다.


엄마는 그렇게 더위를 힘들어하는 대신 추위는 크게 타지 않았었다. 그런데   전부터 엄마 입에서 춥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그것이 나이가 들어 추위에 약해진 것인지 우리 집이 너무 추워서 그랬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둘 다였을지도. 확실한 것은 춥다는 표현을 많이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겨울에 침대 위에 온수 매트를 깔아드렸었다. 그렇게 겨울을 잘 나는가 싶었고, 그다음 겨울에 다시 온수매트를 깔아주려고 하자, 괜찮다며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온수매트를 깔지 않고 겨울을 보냈다. 엄마괜찮다고 해서 진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이모댁에 다녀온 엄마는 거기 흙침대가 따뜻하니 좋았다며 사고 싶다고 은근히 내비쳤다. 나한테 사달라는 것이 아니라 검색해서 주문해 주길 바라는 것이었고, 그게 그렇게 큰일이 아닌데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뤘었다. 흙침대가 너무 무거운 것으로 느껴져서 선뜻 내키지 않았었고, 무엇보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부담이기도 했었다. 진짜 엄마 돈으로 사라고 하기에도 마음이 불편했었으니까. 그러다 작년에 엄마의 요구를 더는 미룰 수 없어서 흙침대를 찾아서 엄마한테 보여주며 어떤지 의견을 물었는데, 엄마는 가격을 보더니 바로 마음을 접었었다. 


엄마한테 의견을 물었던 것은 '이렇게 비싼데도 사고 싶어'라고 시위를 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다시 열심히 검색해서 온열기능이 있는 편백나무침대를 찾았다. 흙침대에 비해 많이 저렴했고, 편백나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엄마도 좋다고 했었다. 매트리스가 없어서 너무 딱딱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엄마는 괜찮다고 그걸 주문하자고 하셨다. 난 엄마 생일이 얼마 안 남았으니, 내가 생일선물로 사주겠다고 온갖 생색을 다 내며 주문했다.

엄마는

'그럼, 우리 ㅇㅇ이 최고지, 널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어.'

라며 맞장구를 었다.

그리고 침대가 왔다. 전에 있던 퀸사이즈의 대형침대를 버리고 슈퍼싱글 편백나무침대가 놓이자 집안은 훨씬 넓게 느껴졌다. 침대에 깔 토퍼도 하나 있었다. 설치기사님께 매트리스는 없는지 묻자, 기사님은 '그럼 안 따뜻하잖아요.' 라며 당연한 것도 모르냐는 듯 말했다. 

그날 엄마는 편백나무 침대에 토퍼 하나 깔고 잤다. 그러나 너무 딱딱했는지 엄마는 침대에 요를 하나 둘 깔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극세사 이불도 깔았다. 침대에는 요와 이불이 겹겹이 쌓여 다. 그 침대에서 엄마는 한 달 정도 지냈다. 그리고 암 치료를 하겠다고 간 병원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엄마가 요와 이불로 구성해 놓은 편백나무침대에서는 내가 다. 내가 자던 침대는 내 방에 덩그러니 놓아두고. 

편백나무침대는 이불과 요를 겹으로 깔아도 따뜻했다. 그러나 여전히 딱딱했다. 옆으로 누우면 골반뼈가 닿아 아프고 똑바로 누우면 등도 아팠다. 오랜 세월 푹신한 침대생활에 익숙해진 탓인지 편백나무 침대에서는 몸을 어떻게 움직여도 딱딱하게 느껴져서 아팠다. 


엄마도 많이 아팠겠다.


편백나무침대 살 때 좋다고 했으니, 좋은 것으로 믿고 싶었었다. 엄마가 요를 깔고 이불을 깔아도 그건 엄마 몫이라고 생각했었고, 같이 방법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이 편백나무침대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편백나무침대에서 잔 지 4달이 지나고 있지만, 딱딱함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침대를 두고 굳이 이 편백나무침대에서 자는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침대의 딱딱함이 내 무심함의 결과 같아서 미안하고, 전기세도 무서워한 엄마한테 흙침대의 가격을 보여 준 내가 너무 후회스럽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렸고, 빗소리에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못 이루며 몸을 뒤척일 때마다 아팠지만, 엄마가 깔아놓은 요와 이불은 편백나무침대의 온기를 잘 전달해주고 있었다. 집 안의 어느 곳보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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