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험에서 이의신청하기
당신은 대학을 다녀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학생이 교수에게 이의신청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이의신청이라는 것은 원래 교수님에게 시험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성적을 받게 된 경위가 무엇이고 혹시나 교수님의 착오가 있었다면 수정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에 가깝다. 다시 말해, 대학에서의 이의신청은 교수님이나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기보다 교수님의 관용을 기대하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했던 이의신청은 시험문제가 잘못되었다는 의미에서의 이의신청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1학년 1학기에 수강했던 ‘컴퓨터적 사고’ 교수님과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컴퓨터적 사고라는 강의는 스크래치라는 프로그램으로 코딩을 간단하게 배워보는 수업이었다. 문제가 된 문제는 제시된 좌표로 정사각형을 만들어야 하는 문제였는데 제시된 좌표로는 정사각형이 아니라 직사각형이 만들어졌기에 나는 좌표를 수정하여 정사각형을 만들었다. 그런데 중간고사 성적을 확인했을 때 나는 그 문제를 틀렸고 교수님께 여쭤보자 좌표대로 따라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이 시험은 반을 나누어서 진행하였는데 한쪽 반에서는 교수님이 좌표대로 따라가라고 말씀해주셨고 다른 한쪽에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당연히 나는 말해주지 않은 쪽이었다.
그래서 교수님께 찾아가서 문제가 잘못 출제되었다고 말씀드렸다. 문제에는 정사각형이라고 했는데 제시된 좌표로는 정사각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확인해 보겠다고 하셨다.
그다음 주에 다시 찾아갔다. 하지만 교수님은 나에게 확인한 결과를 알려주시기보다 귀찮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왜 이렇게 유난이니. 다른 과목은 시험 잘 봤니? “
나는 본인이 문제를 잘못 출제하고는 이렇게 말하는 교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네, 저 다른 과목도 시험 잘 봤는데요.”
“그래? 그러면 다른 과목도 다 A+ 받아오면 나도 A+ 줄게 “
내가 생각하기에 정당한 이의신청에 이렇게 반응하는 교수에게 화가 났다. 이렇게 뻔뻔하고 예의가 없는 교수에게 똑같이 대들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나에게 좋을 것이 없었기에 일단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는 학교장님이라도 찾아가서 고발할까, 커뮤니티에 올려서 이 교수의 뻔뻔함을 알릴까 고민했다. 그러나 한 번만 더 대화해 보기로 마음먹고 다음 주에 다시 한번 찾아갔다.
이번에는 교수님이 출제한 문제를 직접 들고 찾아갔다. 내가 아무리 말했어도 자신이 낸 문제를 다시 보지도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에 눈앞에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제야 채점을 다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저 가만 놔두면 계속 귀찮게 할 것 같으니 네 말을 들어주겠다는 태도였다.
나는 이 3주에 걸친 문제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교수의 행패는 아직 끝나지 않았었다. 내가 이의신청한 문제를 따로 채점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채점하였는데 다시 채점하다 보니 성적이 올라가는 학생도 있었고 떨어지는 학생도 있었다. 문제가 잘못되었고 말고를 떠나서 내가 이의신청을 했기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이 생기는 것이다.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교수는 채점이 끝난 후에 “이의신청한 학생이 누구죠?”라고 말했고 나는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은 이 사달이 누구 때문인지 알게 된 것이다.
이 일 이후에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과연 스무 살이었어도 이렇게 3주 동안 정당한 시험을 위해 싸울 수 있었을까?
아마도 난 못했을 것이다. 스무 살의 나는 교수님의 무심한 눈빛을 견디기에는 너무 연약했고 아마 친구들한테나 하소연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른 살의 나는 고작 그 정도로 굽히기에는 세상에는 참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30대가 되고 나서 느끼는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화를 참을 수 있게 되었고 조금 더 이성적이게 되었으며, 모든 일에 무던해질 수 있게 되었다.
10년의 시간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장점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나이는 먹어버렸고 장점이라도 찾으면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