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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Nov 30. 2023

짧은 소설


“언니, 요즘에 누가 스키니 진 입어요. 부츠 컷이나 와이드 진 입지.

언니들이 안 찾으니깐 스키니 떼오려고 해도 떼올 수가 없다 진짜.”



거울 속엔 팔자 주름이 선명한 오동통한 허벅지에 눈이 가는 중년의 여자가 서 있다. 

이제 마흔둘. 

누구는 내가 청년이라지만 주변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던데. 

아줌마라는 소리는 지겹도록 들어서 내가 먼저 아줌마라고 들이미는 요즘이다. 

남이 불러주는 '아줌마'보다 내가 먼저 말하고 들어가는 ‘아줌마’라는 소리에 상처를 덜 받기 마련이니까.





옷을 안 사 입은 지도 얼만지 모르겠다. 

옷장에 옷이 수두룩한데 제대로 맞는 게 없었다. 

십여 년 전, 분명 꽃이 만발한 저 원피스를 입었을 땐 이쁘다는 소리도 절로 들었는데. 

어제 혹하는 마음에 한 번 입어봤더니 통자 허리에 부각되는 몸매 라인이 못 봐줄 노릇이었다. 

새 옷을 사볼까. 바지도 잡았다 하면 육 칠만 원을 넘던데. 그 돈이면 애들 상하 복이라도 한 벌 괜찮은 걸로 뽑을 수 있을 텐데.








© adigold1, 출처 Unsplash






오늘은 그래도 내 생일이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투자하고 싶었다. 허리 치수를 옷 가게서 말하는 게 싫어서 바지 사 입는 것도 미루고 미뤘는데. 날씨가 쌀쌀해지니깐 웬일인지 담이 소복이 덮인 따뜻한 청바지를 하나 사 입고 싶었다. 이번엔 애들 거 말고 내 거 말이지. 


가성비 좋은 거 말고 예쁜 거 입고 싶었는데. 

나는 통 넓은 청바지보다 소녀시대처럼 타이트한 스키니 진은 소화 못 시키더라도 좀 붙는 걸로 그래도 입고 싶었는데. 


사장님이 나를 말린다. 


아 옷도 입고 싶은 대로 못 입는 내 신세여.



“사장님... 이거 얼마예요? 밖에 세일하는 거 보니깐 이만 원 하던 데. 세일 안 하는 건 얼마예요?”


“언니, 저거는 이제 철 지난 거 들어가는 거라서 엄청 싸게 내놓은 거고, 이거는 쌔삥이잖아. 쌔삥.”


“예? 쌔삣다고요?”(당황하면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나온다)


“어유 언니 요즘 말 잘 모르시네. 완전 새거라구요. 육만 원인데 언니 처음 오셨으니깐 오천 원 빼 드릴게."



아 말끝마다 언니 언니 하는 소리 진짜 듣기 싫다. 나랑 동갑일 거 같은데. 좀 어려 보이기도 하고. 

예전에는 언니 하면 발끈했는데 이젠 그럴 힘도 없다.

 아니 내가 언니가 맞는 것도 같으니까 부르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안 그래도 요즘 들어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거 같은데. 

요새 쓰는 말도 못 알아듣고. 돈도 없고. 내 인생 오늘따라 왜 이렇게 초라하냐. 



“저기, 죄송해요. 다음에 사러 올게요."

“네~~ 언니. 그러세요. 다음엔 꼭 사러 와여 언니.”



끝까지 언니라고 부르는 저 사장님이 얄미워서라도 내가 안사고 꼭지에 욕 듣고 말지. 

그나저나 청바지 참 마음에 들었는데 입맛만 다시며 나왔다. 생각보다 부츠 컷이 내게 잘 어울렸었다. 

오만 육 천 원이면 가만있자, 애들 축구 장갑도 거뜬히 사 줄 수 있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가 축 늘어졌다. 생일이라서 나를 위한 선물을 하나 해보려 했는데. 

좋은 것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청바지 그거 하나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혼 전과 비교도 안되는 내 몸매를 바라볼수록 속상한 마음은 두 배가 되었다. 

다음에 살 빼서 옷 사야지 하고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길을 터덜터덜 걸어갈 그때, 


그 가게가 보였다. 



간판 이름부터 끌리네.




‘니 멋대로 입으세요’



© mikepetrucci,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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