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가출했다.

by 시월아이

태어난 해는 1962년

학력은 초졸

열아홉 살에 결혼

스무 살에 첫째 출산

스물한 살에 둘째 출산


갖은 부업, 신발 공장, 냉장고 공장, 미싱 시다에 식당 이모까지

결혼 후 하루도 쉬어본 적 없는 엄마의 소원은 단 하나

공부를 다시 해 보는 것이었다.


가족들 몰래 마흔 살에 도전한 운전면허 시험에 최종 합격한 날

아빠는 콧웃음을 쳤고

엄마는 세상 다 가진 웃음을 지었다.


내가 새내기 대학생이 되었던 해 어느 날 일요일 아침

엄마는 봄맞이 옷장 정리를 하는듯 했다.

안방 베란다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방안 가득 내리쬐고 있는데

훌쩍이는 소리에 문틈으로 훔쳐 본 엄마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그 해 여름

엄마는 내게 비밀계획 하나를 말씀하셨다.

잠시 나가 살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

아빠에겐 모른 척 해라.

멀지 않은 곳에 방을 얻을 것이야.


아빠는 엄마 없이도 혼자 밥을 잘 챙겨드셨다.

고등어를 좋아해서 매일 고등어만 구워 드셨다.

오빠와 나는 먹을 것이 없어 점점 밖에서 간단히 먹고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아빠 몰래 엄마집에 가서 집밥을 먹었다.


엄마가 가출해서 얻은 집은 시장 한가운데 있는 허름한 주택의 1층 안쪽 작은 단칸방이었다.

작은 밥상 하나와 가재도구 몇 개로 시작한 살림은 석 달 정도 지나자 제법 집 모양을 갖췄다.

낮에는 식당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밥상에 앉아 중학교 검정고시 준비를 하셨다.


중학교 검정고시 시험에 합격한 날

엄마는 우리를 안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내 뒤를 밟은 아빠가 엄마집에 쳐들어왔다.

단칸방과 다락을 샅샅이 뒤지며, 다른 이의 흔적을 찾는듯한 아빠는 아무런 단서가 없자

안도한 듯 집으로 돌아가셨다.


두 달간의 조율 끝에 엄마는 다시 집으로 들어오기로 하셨고

단 한 가지 조건은 엄마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할 때까지 아빠가 아무런 간섭 없이 기다려 주는 것이었다.

식당일, 집안일을 다 하면서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한다는데, 단지 '간섭'만 안 하면 된다는 것이 엄마의 조건이었다.

여자가 지금 공부해서 뭐 하느냐, 쓸데없다, 바람만 든다는, 가볍지만 날카로운 잔소리들은

엄마라는 사람 그 존재 자체를 짓밟는 칼이었고 총이었다.

차라리 죽고말지.

그저 암말 안 하고 가만히만 있어다오. 그것이 엄마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엄마는 독립한 지 1년 6개월 만에 고등학교 검정고시 졸업장까지 거머쥐었다.

엄마는 지난 40년 간 품어왔던 배움의 한을 풀었다.

아빠는 변한 게 없었지만 엄마는 그렇게 변해있었다.




엄마가 식당에 일을 나가고 없는 사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엄마집에 들렀다.

시장의 분주함이 집안까지 파고들었지만 쏟아지는 햇살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입고 있던 블라우스가 구겨질까 엄마의 서랍장에서 꺼낸 아무렇게나 생긴 티셔츠를 입고

엄마가 베던 베개를 꺼내 베었다.

엄마가 입던 옷에서 엄마의 냄새가 났고, 엄마의 베개에서 엄마의 눈물이 느껴졌다.


불쌍한 엄마.

그리고 불쌍한 아빠.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 중 누구 한 명만을 사랑할 수도, 누구 한 명만을 미워할 수도 없는 운명이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