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쓰고 나만 보는 편지
엄마
내가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는 날
가장 후회하게 될 게 뭔지 알아?
미리 후회할 일을 안 만들면 될 텐데
난 벌써 그 후회할 일이라는 걸 해버렸어.
내가 윤진이 가졌을 때 있잖아.
그 때 내가 엄마한테 모질게 했었잖아.
엄마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는데, 아마 그건 거짓말일 거야.
서울 한 구석에 코딱지만 한 열두 평 빌라에 신혼집을 차리고
신혼살림 꾸미는 재미를 즐기지도 못할 만큼 입덧에 힘겨워할 때
멀리 부산에서 올라와 우리 집 청소부터 가재 도구 정리까지 엄마가 다 해줘잖아.
아직 출산도 안 했는데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며 기장 미역을 한 보따리 사들고 와서는
어느 날인가 마땅한 냄비가 없다며
내가 자취할 때부터 썼던 큰 주전자에 미역국을 끓였지.
미역국에서 끓고 있는 것이 물이 아니라 미역국인 걸 알았을 때
나는 불같이 화를 냈어.
"사러 나가려면 한참이나 걸리는데, 오늘은 그냥 여기다 끓여 먹자.
냄새 안 나게 깨끗하게 씻어 놓을게."
개미만한 목소리로 나를 달랬던 엄마는
15년 전 대학교 1학년 새내기 시절
연락도 없이 새벽 5시까지 술 퍼마시다 집에 들어온 내게
차분하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내 핸드폰을 달라고 하셨지.
그러더니 창고에서 망치를 꺼내와 핸드폰을 무참히 때려부시고는
의연하게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던 엄마와는 참 많이 달랐어.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엄마집에 내려와 지내는 동안에도
입덧은 사라졌지만, 엄마를 향한 못된 짜증은 사라지질 않았어.
어느 날 부엌에 나와보니 엄마가 쫄바지를 입고 음식을 하고 있는거야.
빼짝 마른 다리와 엉덩이가 드러나 있는 것이 왜 그렇게 보기 싫었을까.
나는 단번에 엄마에게 바지 좀 갈아입으라고 핀잔을 줬어.
엄마는 놀란 눈으로, 한편으로는 슬픈 눈으로 나를 쓱 보더니 말했어.
"아...어. 이게 한 번 입어보니 편하더라고....보기가 좀 그런가?"
애써 웃어 보이던 무안해하는 엄마의 표정에도
난 미안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지.
임신으로 20kg나 불어 앞뒤로 불룩한 내 몸이 더 한심스러워 짜증이 났어.
40주를 꽉 채운 뒤에도 출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어.
진통 2시간 만에 내 딸이 태어났고, 엄마와 시어머님 두 분이 함께 회복실로 찾아오셨지.
시어머님은 수고했다 말하셨고
엄마는 말이 없었어. 아니, 말을 못 하셨지.
등을 보이며 훌쩍이자 나는 또 괜히 심술이 났어.
"아, 좋은 날 왜 울어!?"
시어머님이 계셨지만 엄마를 향한 내 눈빛과 내 목소리는 아랑곳없이 퉁명스러웠어.
엄마
미안해 정말.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아직 하지 못했어.
사실, 이 말을 한다고 해도 그리 후련할 것 같지가 않아.
혹시라도 엄마가 미안해할까봐서라도 하지 못하겠어.
내가 전화를 한 번에 못 받아도,
누워서 전화를 받아 목소리가 눌려있어도,
카톡에 반나절 이상 답이 없어도,
엄마는 매번 화들짝 놀라며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시지.
그럴 때마다 난 엄마에게 뭐 그런 걸로 놀라냐며
나 이제 마흔이 넘은 아줌마라고, 할머니가 된 엄마를 놀렸지.
엄마는 항상 말씀하셨어.
시집보내고 나니 처음에는 혼자 안 살아서 안심이 될 줄 알았는데
사위가, 아니면 자식이 딸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또 어디가 아픈건 아닌지, 매 순간순간이 살얼음이라고 했지.
그런데 엄마!
내가 요즘 윤진이랑 통화할 때 딱 엄마 마음인거야.
특히 학교 마치고 전화할 때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지.
하이톤의 낭랑한 목소리가 아니면 무슨 문제가 있을거라는 두려움이 드는 거야.
이제야 엄마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
얼마 전에 내가 윤진이 자랑을 엄마한테 했잖아. (아들은 사실 자랑할 게 없긴 해.)
그랬더니 엄마가 웃으며 그랬지.
"우리 딸만(큼) 하겠니?"
엄마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요.